대구 거주 30대 여성, 2000년 ‘경증 뇌성마비 진단’
지난해 도파민 복용 2시간만에 정상적으로 걸어
보호자 "잘못 알고 고통받는 이들에 희망 주고파"
1984년 몸무게 2.4㎏의 미숙아로 태어난 예빈씨는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을 보냈지만, 건강하게 잘 자랐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1998년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까치발로 걷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2000년 3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경증의 뇌성마비’로 진단을 받았다. 이후 서울의 유명 병원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MRI 상에서는 이상 징후가 없었다. 그런데도 모두 뇌성마비가 의심된다고 했다. 친척과 이웃도 “걸음걸이와 자세가 이상하다”고 수군거렸다.
강씨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걸으면서 얼굴을 앞으로 쭉 내미는 게 습관이 된 탓에 거북목 자세가 됐고, 턱관절도 이상이 생겨 치아도 문제가 됐다. 밤이 될수록 몸이 더 뻣뻣해지고 왼쪽 팔다리 강직이 더 심해졌다.
예빈씨의 어머니는 “뇌성마비라면 인지기능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져야 하는데, 딸은 공부를 매우 잘했다. 뇌성마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반전이 일어났다.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예빈씨가 SOS를 쳤다.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다리가 아예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절망적이었다.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며 옴짝달싹 못 하는 딸이 가여웠다”면서 “더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낙담했다”고 회상했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두 시간 만에 너무나도 편안하게 두 발로 걸었다. 그제야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바로 이거였구나”라고 감탄사를 내뱉는 딸을 본 강씨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강씨는 “퇴원 후 찾은 신경외과 교수에게서 세가와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지난 5월 특수 MRI 촬영을 통해 세가와병과 증상이 비슷한 파킨슨병이 아니라는 판단도 받았다.
강효진씨는 “길을 가다가도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이들을 보면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100만 분의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출할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대학교수의 꿈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딸이 ‘오랜 시간 고통스러웠지만, 그 시간이 나보다 힘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해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