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갈대 사이로 속삭이는 바람소리에 ‘詩心’이 절로
갈대밭 너머 계곡 건너편 고모산 아래 언덕에 서 있는 세 채의 정자가 침류정, 오월헌, 동와정이다. 침류정과 오월헌은 인접해 있고 동와정은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 침류정은 김성진이 임진왜란 이후 지은 정자다. 그는 의성 김씨 청송입향조 김한경의 증손인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들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시킨 뒤 자신은 노모를 모시고 피난을 다녀왔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였고, 장성해서는 학식이 높고 효행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그는 정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주력했다.
한산 이병하는 기문에서 “ 대개 물 흐름의 발원처를 보면 술잔에 넘치는 물에 불과하여도 천리를 흘러 바다로 가는 동안 많은 논밭에 많은 이익을 주었고 명문이 자리 잡아 살면서 수백 가문의 현인과 선비들이 좋은 곳을 택하여 정자를 지은 것이 왕왕 바둑판에 바둑돌이 놓인 듯한데 지금 이곳은 회수의 동백산 같이 풍수의 엉킨 형세가 석인이 은거하면서 도의를 행하기 적당한 곳이니 이 정자를 지은 까닭이다. (중략) “흐르는 물이 바다에 이르도록 오염되지 아니한다.”하니 흐르는 물이 멀수록 바야흐로 흐려짐이 이 같으니 사람이 물을 맑게 다스리지 아니할 수 없도다. 이 정자에 올라 그 이름을 돌아보고 생각하면 침류의 이름이 마땅하도다. “라고 썼다.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노래를 품고 있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이 그대로이고
버들가지는 백 번을 잘라내도 새 가지가 다시 난다
동와정의 봄은 백화가 만발하여 경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고 한다. 공자의 제자 무가 그랬듯이 좋은 벗과 더불어 바람 쏘이고 목욕하며 시를 읊고 돌아오기에 좋은 장소이다. 여름에는 구름이 일어나 기이한 자연 경관을 연출했고 가을에는 벼가 무르익은 들판이 펼쳐져서 풍성했다. 이 아름다운 정자도 세월이 흘러 무너지고 부서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후손들이 중건하기로 결정하였다. 후손들은 북쪽 산의 재목을 베고 남쪽 시내의 돌을 옮겨와 동와정을 재실로 중건하였다.
동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집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동와정은 강이나 계곡에 위치한 강계연변형(江溪沿邊形)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루는 누마루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정기는 후손 김동섭(金東燮)이 썼다. “봄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빼어나고 무성한 그늘을 땅에 드리운다. 여름에는 구름이 일어나 기이한 봉우리를 만든다. 가을에는 물이 맑고 저녁노을은 따오기와 함께 날며 벼가 무르익어 많은 이들을 살게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