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백승이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손자는 무력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보다는 대화와 외교교섭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중국인들의 이 같은 인식 때문에 전쟁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에도 외교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내부의 세력다툼으로 국력이 거덜 난 제나라는 외교교섭에 의해 나라의 안전을 도모할 필요성이 절박했다. 외교 솜씨가 탁월한 재상 안영이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강대국 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다.

초나라 왕은 언변이 뛰어난 안영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영을 골려주기로 작정했다. 초나라 왕이 베푼 안영을 환영하는 연회가 한참 무르익고 있을 때 관리가 결박한 죄인을 끌고 연회장 앞을 지나가게 했다.

초왕이 물었다. “그 죄인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했습니다.” “귀국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에 능한가 봅니다.” 초왕으로부터 한대 먹은 안영은 차분하게 응수했다.

“제가 듣기로는 귤나무가 회수 남쪽에 있으면 귤이 영리지만 북쪽에서 자라게 되면 탱자가 열린다고 합니다. 제나라 백성이 제나라에 살 땐 도둑질을 몰랐으나 초나라에 건너오면 도둑질을 하게 되니 초나라 풍토가 도둑질을 하게 만드는가 봅니다.” 강대국 초나라 왕에 카운트 펀치가 된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다.

키가 작고 풍채가 별로인 안영에게 “제나라엔 그렇게 사람이 없소. 그대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다니” “우리나라에서는 사신의 의무를 맡길 때 그 나라의 왕에 맞추어 보냅니다. 상대국 왕이 현명하면 현명한 사람을 뽑아 보내고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사람을 보냅니다. 그래서 제나라에서 가장 어리석은 제가 왔습니다.” 초나라 왕의 조롱을 되로 받고 말로 갚은 안영은 사신으로서 체통을 지키면서 외교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고 상대를 꼼작 못하게 제압했던 것이다. 상황에 따라 올곧은 말, 지혜롭고 재치있는 말로 나라의 체면을 세운 외교 9단이었다.

3박 4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중국 측 홀대는 무능 외교의 졸작이다. ‘한국판 안영’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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