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비 건립 제막식
아리랑은 노래다. 민요의 중요한 갈래로서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불러왔던 민초들의 소리이자 외침이었다. 아리랑은 기록되질 못했다. 아리랑은 민초들의 노래였기 때문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다. 그래서 부르는 사람마다, 부르는 장소마다, 부르는 시기마다 조금씩 달리하며 전승돼왔다.

그러던 중 1896년 선교사이자 최초 공립학교인 육영학교 교사로 이 땅에 온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에 의해 아리랑 가사가 채록돼고 오선지에 악보가 그려졌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아리랑 악보로 후렴구 가사에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라고 기록돼 있다. 여기에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고 특산품이 소개돼 있다. 문경새재 하면 박달나무, 박달나무 하면 문경새재로 불려질 만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헐버트는 반드시 이 후렴구를 부르고 다음 가사를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조선인은 개사(改辭)의 천재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후렴구에 어떻게 해서 문경새재와 박달나무가 들어가게 되었을까? 헐버트는 분명 이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삼천오백일 이전에 유행하던 노래라고 했다.

그때는 경복궁 중수가 끝난 이후로 삼남에서 올라온 수많은 청장년들이 서울로 올 때 넘어왔던 그 문경새재 고개를 넘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였다. 그렇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자리에 노래만 남았던 것이다.

그 남아 있는 노래 중 문경새재가 들어가는 가사가 가장 많이 불리어졌던 모양이다. 바로 그 노래가 유행돼 널리 퍼졌고, 세월이 흐른 후 헐버트가 듣게 된 것이다.

우리의 아리랑은 이렇게 기록돼 널리 퍼져 나갔고 각 지역으로 돌아간 경복궁 중수의 주역들이 그 노래를 그들의 고향에 돌아가 불렀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각 지역에서 부르는 아리랑의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헐버트에 의해 아리랑이 채보 된 지 올해로 만 121년째다. 비록 한 세기는 지났지만 아리랑의 정신과 노래 가락 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고 발전해 나왔다. 그 가운데 문경은 기록되진 않았지만 아리랑을 가지게 됐으며 이를 통해 아리랑 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아리랑 허브를 위한 발걸음을 뗀 것이다.

허브는 중심을 뜻하는 단어다. 아리랑에 중심이 있는가? 중심이 있다면 지역의 중심인가? 노래의 중심인가? 사람의 중심인가?.

대부분의 지역에 아리랑이 전승돼 오고 있다. 특히 정선과 진도 밀양 등지는 아리랑의 주요 도시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지역이 중심이라면 이들 지역이 아리랑의 허브일 것이다.

아리랑도시 선포식
문경도 이들 지역과 같이 아리랑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고 아리랑과 관련해 나아갈 방향도 정하고자 지난 2012년부터 본격적인 아리랑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먼저 문경시에서 추진한 사업은 국립아리랑박물관 건립을 위한 사전 타당성 용역시행과 그 결과를 토대로 지난 2013년 1월 국회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였다.

아리랑 관계자와 전공자가 참여해 문경아리랑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고 국립아리랑박물관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소중한 기회였다.

문경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아리랑 가사를 모으기로 했다. 아리랑 허브를 실현 시키기 위해서는 문경만의 아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아리랑 사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 2만5천 수의 방대한 아리랑 가사를 수집했으며 이를 선별하고 분류한 1만68 수를 한국서학회 회원과 국내 최고의 서예인 105명이 문경전통한지에 한글로 모두 담았다. 서예사적으로도 이렇게까지 큰일은 처음으로 이뤄진 일이며 앞으로도 나오지 못할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작업 후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와 ICA 세계기록총회 참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홍보가 이뤄졌으며, 옛길박물관 상시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사업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알리고 있다. 또한 해외 홍보와 대국민 보급을 위해 도록(圖錄)으로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새재아리랑 일만수록도
문경시는 지난 2013년 7월 문경새재아리랑제를 서울 광화문에서 개최했다. 이때 문경새재아리랑의 상징처럼 돼 있는 다듬이 공연을 문경시민 252명이 참가해 기네스북에 올리는 성과도 거뒀다.

서서히 시민이 아리랑과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학계, 재계, 정계 등 아리랑과 문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아리랑 세계화 포럼을 결성해 아리랑에 대한 중·단기사업계획과 무형문화센터의 건립, 아리랑 도시 선포에 대한 부분을 심도 있게 포럼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5년 12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경시민과 관계자 등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아리랑도시’를 선포했다.

이날 아리랑 로고송을 발표하고 아리랑 로고 발표 및 그간 문경시에서 추진한 아리랑 사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리랑 로고 제작은 앞으로 문경시의 아리랑사업에 통일성을 가지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작업이다.

문경시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올해까지 문경새재아리랑제를 10회 개최하면서 아리랑에 대한 주제를 다양하게 접근해 저변확대를 지속 추진했다.

헐버트 가사
헐버트 가사
이렇게 추진돼 온 문경의 아리랑에 대한 시책은 전국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올해 아리랑제의 주제를‘팔도아리랑 문경으로 모여든다’로 정해 전국의 아리랑 전승자를 한 자리에 모으는 뜻깊은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올해도 이러한 분위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아리랑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아리랑 학교가 문화원에 개설돼 일 년 동안 강좌가 이뤄졌고 러시아 사할린에서 개최된 사할린 아리랑제에도 참가해 아리랑으로 우리 동포와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문경새재아리랑의 기준 악보가 없어 홍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기준 악보의 제정으로 교과서 등재와 시민과 국민에게 통일된 문경의 아리랑을 알려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결국 아리랑을 문경의 정체성으로 만들어가는 기회가 될 것이며 시민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 널리 불리어 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리랑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하나이면서 또한 여럿이 되고, 늘 함께하는 것이 바로 아리랑이다. 문경으로 아리랑이 모이는 것은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문경새재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새로운 희망의 세상을 열고 모두 함께 아리랑고개에서 대동 세상을 함께 만들어보자는데 그 의의가 있다.

황진호 기자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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