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크리스마스는
지등을 들고 성당에도 가지만
자욱한 안개를 헤쳐
서먹해진 제 영혼을 살피는 날이다

유서를 쓰는,
유서에 서명을 하는,
다시 그 나머지 한 줄의 시를 마지막인양 끄적이는
어리석고 뜨거운 나여

만약에 만월같은 연모라도 품는다면은
배덕의 정사를 쉽사리 저지를
그리도 외롭고 맹목인 열애
까맣게 내 두뇌를 태워 가고 있다

슬픔조차 신선하지 못해
한결 슬픔을 돋우고
어째도 크리스마스는 마음놓고 크게 우는 날이다

석양의 하늘에 커다랗게 성호를 긋고
구원에서 가장 먼 사람이
주여, 부르며 뿌리째 말라버린 겨울 갈대밭을
달려가는 날이다





감상) 성당에 가느냐고 물으셨다. 가끔요, 대답했지만 나는 매 주 그 앞을 서성거리곤 한다. 서성거리다 돌아오곤 한다. 천국이 필요한 자에게 그곳은 동경의 대상일 뿐, 특별한 날이 더욱더 외로운 사람들끼리 문자를 하다 각자의 서러움에 전화기를 껐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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