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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안전 '셀프 점검'으로 어떻게 화재 막겠나

연합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12월26일 18시27분  
29명이 화재로 숨진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건물은 소방안전의 ‘부실 덩어리’였다. 화재 발생 20여 일 전에 실시된 소방안전 점검 때 지적된 사항만 29개 항목, 66곳에 달한다고 한다. 이 건물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있는 특정 소방대상물이어서 건물 내에 356개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1층에서 발화해 건물 전체로 번질 때까지 스프링클러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1차 진화장비인 소화기도 속이 텅 빈 상태였다. 방화 셔터는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핵심 설비인데 5·6층 방화 셔터는 작동 불량이었다.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탈출하는 완강기는 지상 3층부터 모든 층에 설치해야 하지만 전체 9층 중 3·5·8층에만 있었다. 아크릴 등으로 덮인 8층과 9층 테라스도 무허가 증축시설이었는데 감식결과 연기와 유독가스 배출을 막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소방안전에 관한 한 ‘부실 종합세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방시설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진 것도 인명피해를 키운 주범으로 지목된다. 소방전문 관리업체 J사는 지난달 30일 이 건물을 점검할 때 2층 여성사우나를 생략했다. 직원이 모두 남자여서 여성사우나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여성사우나에서만 20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여성사우나에서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철제선반으로 막혀 있었다. 얼마 전 소방점검 때만 제대로 여성사우나를 봤어도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 현 소유주에게 경매로 넘어오기 전까지 전 건물주 아들이 소방안전 관리를 맡은 사실도 밝혀졌다. 전 건물주의 아들이 관련 자격을 갖춰 불법은 아니지만 ‘셀프 점검’이 제대로 됐을 리 만무하다. 작년 8월 제천 소방서에 제출된 안전보고서에는, 주요 소방설비에 대부분 이상이 없고 비상조명등 교체 등 경미한 사항만 있었다고 한다. ‘셀프 점검’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 셈이다.

소방안전에 관한 법규도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격증을 가진 직원을 통해 자체적으로 소방점검을 하는 ‘셀프 점검’도 현행 소방시설관리법에선 불법이 아니다. 제천 화재에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셀프 점검’이 현행법에 허용된 행위라니 말문이 막힌다. ‘셀프 점검’ 결과를 허위로 보고해도 처분은 최대 200만 원의 과태료에 불과하다. 금전적으로만 보면 미비한 시설을 보완하느니 과태료를 내는 게 이익이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관할 소방서가 자체점검 보고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시정 조치를 할 수 있지만 통상 이 절차를 거치는데 한 달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 사이에 큰불이 나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제천 화재 때 소방차 접근을 막았던 불법주차 문제가 참사 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런 불법주차를 막는 이른바 ‘소방차 통행법’은 수개월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무엇보다 소방안전 관련 법제의 전반적인 재정비가 시급하다. 허술한 법규를 서둘러 보완하고, 형식적인 소방점검 체계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을 해소하고 안전사고 대응 매뉴얼 등을 개발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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