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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시인
재난 피해는 사람만 당하는 게 아니다. 돌봄의 손길이 끊긴 가축이나 애완동물도 예외 없이 고통을 겪는다. 주인을 찾아 골목을 어슬렁거리거나 배가 고파 울부짖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애처롭다.

외신에 의하면 지난번 멕시코 강진으로 가족을 잃은 반려동물이 상당수 발생했다. 이들을 새로운 위탁 보호자와 맺어 주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여, 수십 명이 애견과 애묘를 입양하였다는 보도다. 장탄식이 그득한 슬픔의 와중에도 측은지심의 사랑은 꿈틀댄다. 애틋한 생명 존중의 발로이다.

액난에 임하는 인간의 대응은 다양하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긴장감이 고조될 때 나는 운명이라고 자위했다. 대자연의 심술로 인한 돌발 상황은 누군가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는 없으나 신의 뜻으로 맡겼다. 한결 심신이 평안해졌다.

근데 뒷소문으로는 과민 반응을 표한 사례도 드러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뜻이다. 여차하면 탈주하고자 음식을 준비하여 승용차 안에서 지냈다는 부류도 있었고, 가족을 인근 도시로 피난시켰다는 이웃도 보였다.

글로벌 금융투자회사인 ‘모건 스탠리의 기적’은 재난 대피 훈련의 모범 사례로 회자된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발 사고를 계기로, 매년 네 차례씩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비상계단을 통한 교육을 실시해 왔다. 덕분에 2001년 9.11 테러 때 거개가 무사히 피신한 쾌거를 이뤘다.

당장은 귀찮게 여겨지더라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는 반복 연마는 반드시 필요하다. 예기치 않은 사태로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는 자구책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장수’라는 별칭을 가진 영웅이다.

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연습은 힘들게, 실전은 쉽게 하라. 군대 조직을 통솔하는 대원수의 어록이나 불의의 재앙에 대비하는 경구로도 손색없다. 하지만 우린 그 반대로 행동하는 듯싶다. 그냥 연습이니까 건성건성 대충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다 발동한 민방위 훈련을 대하는 자세를 봐도 그러하다. 수보로프의 말대로 평소의 교육을 진지하고도 까다롭게 수행할 당위가 있지 않을까.

가끔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일상의 지침으로 명심할 만한 도서를 만난다. 일본의 히로세 히로타다가 지은 ‘인간은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하는가’라는 책이다. 방재 전문가로서 활동한 저자는 재해심리학 차원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조언한다.

먼저 정상성 바이러스를 의심하라. 우리의 마음은 위험을 둔감하게 수용하도록 구조화됐다. 과도하게 낙관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다음 동조성 바이러스를 피하라. 타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탈출의 골든타임을 놓친다. 위기를 느낀다면 스스로 판단하라.

또한 얼어붙는 증후군을 깨라. 재해를 만나면 순간 전신이 마비되는 생리적 현상을 맞는다. 심호흡이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전문가도 오류가 있으므로 과도한 신뢰를 금하고, 현장의 책임자는 패닉을 우려하여 정보를 축소해서 알린다는 점을 감안하라는 충고다.

삼십 년 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저술했다. 산업 근대화와 경제 성장으로 불안은 일상화됐다고 지적한다. 지하에서 벌어지는 싱크홀 현상처럼 문제점과 더불어 동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고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발생하나, 그 처리 능력에 따라 성숙한 사회의 정도가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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