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를 대표하는 포크 가수 최재관씨가 28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SONG’이라고 적힌 글귀 아래에서 자신의 노래인생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12월 23일 오전 TV 브라운관.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질끈 묶고 통기타를 든 이가 아내와 쌍둥이 딸, 아들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가족이 참여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4연승을 한 날이다. ‘횟집 라이브 가수’로 이름 붙인 이 가족은 노래 실력이 출중했다. 그는 “가족 모두 화음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따라부를 정도로 자신 있어 했던 김광석 노래도 4연승에 한몫했다”고 말했다. 대구 거리공연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가수 최재관(47)씨는 이렇게 전국방송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긴 염색 머리 포크 가수’ 최씨는 대구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다. 통기타 둘러매고 감미롭게 뿜어내는 그의 음색을 즐기는 팬도 많다.

그가 가지지 못한 게 딱 하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노래다. 김광석, 조용필 등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만 불렀다.

음악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단련했다. 거리에서, 무대에서 매일매일 노래했다.

1989년 대학 시절 대학가요제 대구지역 예선에서 동상을 타고 가수로 이름을 올린 지 28년 만인 지난 8월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첫 음반을 손에 쥐었다. ‘오직 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앨범이다. 자작곡 5곡을 실었다.

최씨는 “2006년 결혼해 세 아이를 정성으로 길러준 것도 모자라 오로지 음악만 바라본 나를 끊임없이 뒷바라지해주고 응원해준 띠동갑 아내에게 바치는 앨범”이라고 했다.

▲ 대구를 대표하는 포크 가수 최재관씨가 28일 경북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생애 첫 앨범 타이틀곡 ‘오직 한 사람’을 통기타 연주와 더불어 들려주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조용필과 마이클 잭슨에 반해 가수의 꿈을 품었다. 고3 때는 신촌블루스 객원싱어 고 김형철, 신재형, 이상래 등 당시 잘 나가던 가수들에게서 음악에 대한 철학과 기본기를 다듬었다.

스무 살에는 무대에도 섰다. 대구 포크 음악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코러스’의 정식 멤버가 됐다. 월 5만 원의 월급도 받았다. 통기타 가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2년 뒤 대학가요제 동상을 타면서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음악인생의 틀을 갖추는 계기였다”고 했다.

1998년 거리모금공연을 시작으로 지역 곳곳을 누비며 자신만의 색깔을 녹여냈다. 하지만 정식 앨범 하나 없는 언더그라운드의 길은 험하기만 했다.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연이어 돌아가시면서 3형제 중 장남으로서 책임감도 컸다. 음악이냐 생계냐 갈등하면서 방황도 했다.

2006년 아내 김민경(35)씨와 결혼하면서 참치 횟집을 차렸다. 포크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줄기 등대이자 빛으로 통하는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주변에 있는 ‘지노 참치’다.
▲ 대구를 대표하는 포크 가수 최재관씨가 28일 경북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생애 첫 앨범 타이틀곡 ‘오직 한 사람’을 통기타 연주와 더불어 들려주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최씨는 “음악에 매진하면서도 경제활동이 가능한 최선의 길이 필요했다”면서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을 한다. 덕분에 골수팬도 많이 거느리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내년에는 대중들을 위한 자작곡으로 꾸민 2집 앨범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느낀 절망과 고통, 희망과 깨달음을 노래로 녹여내고 싶다. 콘서트를 통해서는 최재관만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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