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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54.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

칠요의 정기 타고나 열여덟에 國仙이 되다

윤용섭 전 삼국유사사업본부장 등록일 2018년01월04일 18시13분  
▲ 경주 황성공원에 세워져 있는 김유신 장군 동상.
경상북도와 군위군이 추진한 ‘삼국유사목판사업’이 지난 해 12월 29일자로 일단 마무리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초기에 간행한 ‘선초본(鮮初本) 삼국유사목판’과 조선중기에 간행한 ‘임신본(壬申本) 삼국유사목판’이 완료되었고 선초본을 저본(底本)으로 오?탈자(誤脫字)와 이체자(異體字)를 정정한 ‘경상북도 교감본’을 작성하여 한국국학진흥원 홈페이지-‘삼국유사목판사업’에 싣고 이를 공개하였다. 누구나 여기 들어가서 삼국유사 선초본과 임신본, 그리고 교감본을 활용할 수 있다.

진흥왕 시절부터 국력을 키워온 신라가 진평왕과 선덕?진덕 두 여왕시대를 거치면서 화랑도가 융성하고 국민 모두가 애국심과 용기로 일치단결하던 중, 김유신과 김춘추라는 절세의 인걸이 등장하여 마침내 수백 년의 민족분열기를 마감하고 통일국가를 이룩하였다. 그러면 이제부터 삼국유사가 소개하는 ‘김유신전(金庾信傳)’을 간추려본다.

가락국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은 신라 진흥왕에게 항복하였는데, 그 아들이 이간(伊干) 김무력(金武力)이다. 무력의 아들이 각간(角干) 서현(舒玄)이요 서현의 큰아들이 유신(庾信)이며 아우는 흠순(欽純)이다. 맏누이는 보희(寶姬)로서 소명(小名)은 아해(阿海)이며, 누이동생은 문희(文姬)로서 소명(小名)이 아지(阿之)다.

유신공은 진평왕 17년 을묘(乙卯; 595)에 태어났는데, 칠요(七曜)의 정기를 타고났기 때문에 등에 칠성의 무늬가 있었으며,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많았다. 나이 18세가 되는 임신(壬申)년에 검술(劍術)을 익혀 국선(國仙)이 되었다. 이때 백석(白石)이란 자가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여러 해 동안 낭도의 무리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때 유신은 고구려와 백제의 두 나라를 치려고 밤낮으로 궁리하고 있었는데 백석이 그 계획을 알고 유신에게 고한다. “내가 공과 함께 먼저 적국에 가서 그들의 실정(實情)을 정탐한 뒤에 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신이 기뻐하며 백석을 데리고 떠났다. 고개 위에서 쉬고 있노라니 두 여인이 그를 따라와서 골화천(骨火川)에 이르러 자게 되었는데 또 한 여자가 갑자기 이르렀다. 공이 세 여인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노라니 여인들은 맛있는 과자를 그에게 주었다. 유신은 그것을 받아 먹으면서 그들을 믿게 되어 자기의 사정을 말하였다. 여인들이 말한다. “ 원컨대 공께서 백석을 떼어 놓고 우리들과 함께 저 숲속으로 들어가면 실정을 다시 말씀하겠습니다.” 이에 그들과 함께 들어가니 여인들은 문득 신(神)으로 변하더니 말한다. “우리들은 나림(奈林)?혈례(穴禮)?골화(骨火) 세 곳의 호국신(護國神)이오. 지금 적국 사람이 낭(郎)을 유인해 가는데도 낭은 알지 못하고 따라가므로, 우리가 말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오.” 말을 마치고 자취를 감추었다. 공은 말을 듣고 놀라 두 번 절하고 나와서는 골화관(骨火館)에 묵으면서 백석에게, 중요한 문서를 잊고 왔다고 하며 함께 집에 돌아와 백석을 취조하니, 백석이 다음과 같이 실토하였다.

“나는 본래 고구려 사람이오. 우리나라 국경지방에 물이 역류하였는데, 추남(楸南)이 아뢰기를, 대왕의 부인이 음양의 도를 역행(逆行)한 때문이라 하니 왕비가 몹시 노하여, 대왕에게 고하기를, 다른 일을 가지고 시험해서 맞지 않으면 중형(重刑)에 처하라고 했소. 이리하여 쥐 한 마리를 함 속에 감추어 두고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반드시 쥐일 것인데 그 수가 여덟입니다 했소. 이에 그의 말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죽이려하자 그가 맹세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대장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라 했소. 그를 죽이고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 일곱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舒玄公)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더니 모두 ‘추남이 맹세하고 죽더니 과연 맞았습니다’ 했기 때문에 나를 보내서 그대를 유인하게 한 것이오.”

공이 곧 백석을 죽이고 음식을 갖추어 삼신(三神)에게 제사지내니 이들이 모두 나타나서 제물을 흠향했다.

김유신의 집안 재매부인(財買夫人)이 죽자 청연(靑淵) 상곡(上谷)에 장사지내고 재매곡(財買谷)이라 불렀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 집안의 남녀들이 그 골짜기 남쪽 시냇가에 모여서 잔치를 열었다. 이럴 때엔 백 가지 꽃이 화려하게 피고 송화(松花)가 골짜기 안 숲속에 가득했다. 골짜기 어귀에 암자를 짓고 이름을 송화방(松花房)이라 하다가 원찰(願刹)로 삼았다. 54대 경명왕(景明王)이 공(公)을 봉해서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 했다(삼국사기에는 42대 흥덕왕이 추존). 능은 서산(西山) 모지사(毛只寺) 북쪽 동으로 향해 뻗은 봉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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