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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 19. 축산항~대진항

솔향 그윽한 목은 사색의 길 걸으며 詩想에 젖다

이순화 시인 등록일 2018년01월07일 16시51분  
▲ 축산항 죽도산
죽도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섬이었다 한다. 섬이 축산천과 동해안 연안류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산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섬이 산이 될 수 있을까.

죽도산을 수문장처럼 어귀에 두고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는 축산항이다.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 대게 위판장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 와우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대소산이 서풍을, 죽도산이 남풍을 막아주는 피항지로도 유명한 곳, 축산항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남씨 발상지 표지석
와우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이다. 왼쪽에는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금줄이 노거수 생가지에 걸려있고 오른 쪽에는 남씨 발상지 표지석이 서 있다. 이 마을은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 때 남씨의 입향시조가 유명하다.

현재 남씨의 시조가 된 영의공(위민)은 당나라 하남성 여남 사람이었다. 위민은 755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오던 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영양 땅(지금의 영덕군 축산면)에 머물게 된다. 뜻하지 않게 위민이 신라에 살기를 원하니 경덕왕이 이런 사실을 당에 알리자 현종이 허락하였다. 경덕왕은 그가 중국 여남에서 왔다하여 남씨(南氏)를 내리고 영양현을 식읍으로 내렸다한다.
아침 햇살 스며드는 숲속에 사당
축산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조 영의공 유허비를 돌아보며 산길을 오른다. 산중턱에 단청고운 유허 비각이 보이고, 길옆에는 월영대(月影臺), 그리고 일광대(日光臺)라는 비석이 서 있다. 숲속에 금줄 치고 들어앉은 저 집은 사당일까. 숭신문(崇神門), 명신각(明神閣)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이곳은 인간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인 것 같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려있는 산을 내려서니 눈앞이 환한 바다다. 북쪽으로 1km나 올라 왔을까, 잘 다듬어놓은 해안 길을 두고 또 산으로 들어선다. 온통 소나무 군락지다. 겨울을 맞은 솔잎이 한창 푸르다. 소나무숲길이 구불구불, 나무계단이었다가 흙길이었다가, 이제는 푹신푹신한 낙엽 쌓인 길이다.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서야 봉화산 정상에 오르니 대소산봉수대가 기다리고 있다.
대소산봉수대가는 길
대소산봉수대
이 봉수대는 조선 초기의 것으로 남쪽으로는 영덕 별반산봉수대, 북으로는 평해의 후리산봉수대, 서로는 광산봉수대를 거쳐 진보의 남각산봉수대로 이어지도록 되어있다. 남쪽으로 멀리 산릉선에 영덕 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서쪽으로 백두대간 첩첩 산릉선이, 북쪽으로는 고래불해변이, 동쪽으로는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대의 통신 수단이었던 봉수와 현대식 철탑이 나란히 서 있다. 현재와 과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봉화산 오솔길
봉화산 정상을 내려서는 오솔길이 소나무 터널이다. 긴 터널은 솔향기로 가득 넘친다. 힘들이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다. 도심과 다르게 여기는 산소량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자세히 보니 소나무 밑에는 잎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철쭉이나 진달래다. 봄이 오면 온 산이 분홍꽃으로 덮여 상춘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겠다. 길옆에 돌탑이다. 돌 하나를 주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올려본다. 아슬아슬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소원이 떨어질 것 같다. 괜히 걱정만 늘었다.
사진 구름다리
망일봉으로 올라가는 길, 소나무에 둘러싸인 망월정(望月亭) 정자가 보인다. 동쪽 바다에는 고기잡이배가 해수면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다. 여기 오래 앉아 있으면 일렁거리던 마음도 저기 배 지나가고 남은 자리처럼 잔잔해 질 것 같다. 산허리를 돌아서자 동해를 옆에 끼고 구름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축산면에서 영해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목은 이색의 사색의 길
솔숲 사이로 길이 고불고불 아름답다. 편안하다. 고요하다. 목은 이색의 사색의 길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이 길을 오가며 문인은 얼마나 많은 시상에 젖어들었을까.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동녘 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 하니 갑자기 슬러 두 눈이 먼저 캄캄……몇 년 새에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까치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 일세’ 목은 이색의 -영해 동녘바다 해돋이-라는 시를 읊어본다.
목은이색기념관
가도 가도 소나무 울창한 숲길. 갑자기 길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여기가 괴시마을 목은이색기념관이다. 월요일이 휴일이라는데 아직까지 문이 잠겨 있다. 고려 말 삼은 중의 한사람이었던, 대학자이며 대문호였던 목은 이색은 외가인 괴시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20세에 부친이 머물던 만리타국 원나라에서 유학을 했다. 이곳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집을 떠나 언제나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고향에 대한 시 20여수를 남겼다.
목은 이색의 시비
목은기념관을 내려서니 선생의 시비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이 글‘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늬 곳틔 픠엿는고/ 석양에 홀노서서 갈 곳 몰나하노라’ 시험에 자주 나왔던 그 시조다. 학창 시절 멋모르고 외던 글귀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목은 이색의 생가터 무가정지에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 따스한 겨울 빛 속에서 문인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선다. 이 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이라 불렀었다. 선생이 원나라에 유학할 당시 대학자였던 구양현의 고향인 괴시처럼 시야가 넓고 풍광이 아름답다 해서 괴시(槐市)로 개명했다한다. 선생의 외조모가 지금 괴시마을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영양남씨다.
괴시마을
괴시마을 고택
괴시마을은 경북 동해안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전통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문화와 예절도 훌륭하게 전승되고 있다. 경북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영양남씨 괴시파종택, 구계댁, 괴정댁, 물소와고택, 영은고택 등의 여러 전통 가옥들이 밀집해 있어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마을 입구 이끼 앉은 비각 앞에서 주춤, 걸음을 멈춘다. 금줄을 두른 신령스러운 나무, 노목 앞에는 ‘축귀장군남정중(逐鬼將軍南正重)’이라고 음각한 비각이 서 있다. 여기에는 또 마을의 어떤 전설이 깃들어있을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며 돌아서는 시선, 저기 동쪽 산꼭대기에 단정한 기와집. 저기가 바로 목은 이색이 동해바다에 온갖 물고기가 헤엄쳐 노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셀 수도 있었다는 관어대인가 보다.
대진항
꿈을 꾸고 있는 대진항에 모형 돛단배
관어대를 바라보며 걸음을 떼는 관대길 큰길가에 성황당이 눈길을 끈다. 여기도 인간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경계 밖의 또 다른 세계다.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당집을 두고 돌아서는 걸음이 빨라진다. 길 양 옆으로 대숲이 바람에 술렁인다. 바람결에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저기 고갯마루만 넘어서면 대진항일 것 같다.

이순화.jpg
▲ 글·사진 이순화 시인
교통편: 대진항에서 축산항으로 가는 버스 시간

7:12, 8:52, 10:12, 11:22, 12:42, 13:42, 15:12, 16:52, 18:22, 19:12

여행자를 위한 팁: 축산항에서 괴시마을까지(약 8km)는 온통 송림 우거진 숲길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고불고불한 산허리를 수십 번은 돌아나가다 보면 저절로 사색의 길로 빠져든다. 적막감은 있지만 햇살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어 아라베스크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이 환상적이다. 하지만 계속 산길이다 보니 여자라면 동행이 있어야겠다. 괴시마을에서 대진항(2.8km)까지는 인가를 옆에 두고 있는 포장도로다.



겨울철 오징어 말리는 풍경
축산길 해안도로
대소산봉수대에서 바라본 영덕풍력발전단지
망월봉 가는 길에 만난 돌탑
황개비산에서
괴시마을 초입 풍경
영해 관대길에서 만난 성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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