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윤여정·문숙, ‘비밥바룰라’ 박인환·신구 등
장년·노년층 이야기 본격 풀어낸 영화는 드물어

▲ 윤여정 [연합뉴스 자료사진]
새해 극장가에 관록 있는 노(老) 배우들이 속속 얼굴을 비치고 있다. 30∼40대 남자배우들의 멀티캐스팅과 겹치기 출연에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익숙하더라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17일 개봉하는 ‘그것만이 내 세상’에는 장년의 여배우가 여럿 나온다. 윤여정이 조하(이병헌)와 진태(박정민) 형제를 연결하고 보살피는 어머니 주인숙으로 출연한다. 도회적 이미지를 벗고 무한한 애정으로 형제를 감싸는 어머니를 연기했다. 최근 시사회에서 “나이 먹은 만큼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비슷한 연령대에서 상업영화의 주연급 캐릭터를 맡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윤여정(오른쪽)[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들 바보’ 어머니는 그동안 숱하게 봐온 전형적 캐릭터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막바지 신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생활 53년 차인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경상도 사투리에 도전했다.



고 이만희 감독의 ‘뮤즈’로 명성을 떨쳤던 배우 문숙도 피아니스트 가율(한지민)의 할머니 복자 역으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태양을 닮은 소녀’(1974), ‘삼포가는 길’(1975) 등 1970년대 중반 5편의 주연작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난 그는 2015년 ‘뷰티 인사이드’에 출연하며 38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윤여정과 문숙이 젊은 배우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이지만, 24일 개봉하는 ‘비밥바룰라’의 남자 배우 네 명은 노년의 삶을 코미디에 담아 이야기의 핵심으로 끌어들인다.

‘비밥바룰라’[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노인들이 평생 마음속에 담아뒀던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박인환·신구·임현식·윤덕용 등 주연 배우 네 명의 연기경력을 합하면 207년에 달한다. 1945년생으로 박인환과 함께 넷 중 ‘막내’인 임현식은 최근 제작보고회에서 “그동안 우리나라에 노인 영화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영화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나이 지긋한 배우들의 활약은 지난해부터 두드러졌다. 나문희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연기한 ‘아이 캔 스피크’로 연말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고 안방극장의 ‘국민 엄마’ 고두심은 ‘채비’로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했다. 백윤식이 천호진·성동일과 호흡을 맞춘 ‘반드시 잡는다’는 스릴러로서는 드물게 노익장을 앞세웠다.

▲ 나문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드시 잡는다’의 백윤식[뉴 제공]
이런 변화는 고령화에 따라 장년층이 극장가 주요 고객으로 등장한 영향도 있어 보인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관객은 전체의 10.0%로 2013년 5.7%에서 배 가까이 증가했다. 2.8%에 그친 10대에 비하면 3∼4배 많다. CGV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젊은층이 맛집 탐방 같은 새로운 여가에 눈을 돌리는 반면 중장년층은 취미활동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어서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숙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장년이나 노년층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 상업영화는 여전히 드문 편이다. 올해 선보일 작품 중에는 민규동 감독의 신작 ‘허스토리’ 정도가 눈에 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로, 김희애·김해숙·예수정·문숙이 출연한다. 독립영화 쪽에서는 지난해 김혜자·송재호 주연의 ‘길’과 박인환·오미희의 ‘푸른노을’ 등이 선보였지만 많은 관객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비밥바룰라’를 제작한 영화사 김치의 정유동 대표는 “어르신들에게는 내 인생 얘기 같고, 젊은 관객은 자녀 입장에서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영화로 기획했다”며 “과거에도 어르신들 위주의 영화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우울하고 슬픈 내용이어서 다른 연령층 관객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외면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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