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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지난주에 이어서 글쓰기에 대해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글쓰기 공부도 좋은 스승을 만나야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독학자는 마음에 드는 스승만을 섬기기 때문에 ‘스승을 견디고 넘어서는’ 경지를 끝내 알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취하고 버릴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을 아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뜻합니다. 인간을 모르면서 인간들이 쌓아온 문화를 알기는 힘듭니다. ‘오래된 미래’를 보는 기회를 얻기는 더더욱 힘듭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공부는 결국 인간 안에 있습니다. 책에는 알아야 할 것 중 극히 일부만 담겨 있을 뿐입니다. ‘백련자득(百鍊自得)’도 중요합니다만 좋은 스승 한 사람 만나서 금방 깨치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글쓰기 공부의 첫걸음은 좋은 스승을 만나 지켜야 할 기본을 배우는 일입니다. 제가 아는 기초적인 글쓰기 공부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비판적 독서를 토대로 분석과 종합을 부단히 수행한다. 자기를 죽이고 스승을 답습한다.

②그 과정에서 전제와 결론을 명제로 요약하는 역량을 기른다. 요약 작업을 스승의 시각에서 검증한다.

③도입을 일상(日常)에서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는 임기응변의 서사 능력을 기른다. 스승, 동학(同學)들의 글과 자기 글을 수시로 비교해 본다.

④자기 비판적 글쓰기를 몸에 붙인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글감을 퍼 올린다.

⑤내 글이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엄정하게 평가하고 발표 전 엄밀한 퇴고 작업을 수행한다. 글쓰기가 매번 즐거운 작업이 될 때 스승을 떠난다.

스승의 글을 비롯해서 동학들의 글을 읽고 그 장단(長短)을 파악하다 보면 절로 전제를 세우고 결론을 내리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 비판적 맥락을 엄정하게 설치하고 그 안에서 호소력 있는 내용물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입니다. 역지사지 견물생심(易地思之 見物生心), 나를 비우고 허심탄회하게 주제나 소재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내 얼굴을 약간이라도 가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만사 도루묵입니다. 본의 아니게 글쓰기의 정도(正道)에서 이탈해 본격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잡을 수 없게 됩니다. 내 안에 든 ‘무궁한 것들’이 올라올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쓰기는 평소에 내가 모르고 지내던 ‘내 안의 즐거운 것’들을 불러냅니다. 발견의 기쁨을 주는 글쓰기를 위해서는 최대한 나를 버려야 됩니다.

성과가 있으면 주저 말고 스승을 떠나야 합니다. ‘길 없는 길’에 나서서 관(觀)과 견(見)의 시야를 두루 갖추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 내야 합니다. 이때부터는 글쓰기의 ‘경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 줄, 한 단락에 집착하기보다는 ‘마땅하고 옳은 경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표현에도 공을 들여야 합니다. 의미는 의미대로 세우고, 또한 다양한 뉘앙스는 뉘앙스대로 생성되도록 해, 윤기 있고 풍성한 느낌을 주는 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코드(문법)는 코드대로, 맥락(상황)은 맥락대로 잘 살려내야 합니다. 반어와 위트도 적절히 사용해 글의 활력을 높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기술이 몸을 떠난 경지’를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의지를 가지고 부단히 써야 합니다. 속도를 제압할 수 있는 혜안이 구비되고, 모든 동작의 시작과 끝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깃털같이 가벼운 것을 태산처럼 무겁게 쓰는 경지, 대교약졸(大巧若拙·큰 기교는 오히려 치졸해 보인다)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단계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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