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 대구은행 연수원 ‘北 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 새삼 화제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DGB 대구은행 연수원 2층 19㎡(약 6평) 공간에 마련된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에는 북한응원단이 남긴 손글씨와 미녀 응원단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제주도 백록담 청석바위에 통일의 노래를 아로새기리. 김일성종합대학 문예대학 홍현아. 주체 92년(2003년) 8월 23일.’

‘통일되는 그 날에 꼭 다시 만납시다!. 민족 공조로 자주와 평화를 지키는 해. 2003년 8월 22일. 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학부 허명미.’

10일 오전 10시 찾은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DGB 대구은행 연수원 2층 19㎡(약 6평) 공간에 마련된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에는 이런 문구들이 즐비했다. 연수원 관계자는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북한이 파견한 미녀응원단과 관계자들이 8월 20일부터 9월 1일까지 12박 13일 동안 대구은행 연수원에서 묵었는데, 떠나는 날 간곡히 부탁해 받은 글들을 모아 4개 대형 패널로 전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평창에 최대 규모의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 등을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 더 그렇다.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DGB 대구은행 연수원 2층 19㎡(약 6평) 공간에 마련된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에는 북한응원단이 남긴 손글씨와 미녀 응원단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전시실에는 15년 전 그날의 생생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취주악대 120명과 응원단 150명 등 300여 명이 연수원 5~6층 객실에 남겨두고 간 생활용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샤워 타올, 빨랫비누와 샴푸, 치약, 평양친선병원이 처방한 약이 든 약봉지, 물건 보관용 비닐봉지가 있었고, 탬버린과 같은 응원 도구도 즐비했다. 북측에서 선물로 준 도자기와 영광 담배, 들쭉술, 룡성맥주, 배단물, 귤사탕 등 과자류도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직접 손으로 만든 자수 작품과 ‘우리민족끼리 민족대실천단’이라 적힌 티셔츠와 스카프도 있었다. 여기에다 북측 고위관계자들의 친필 방명록과 미녀 응원단이 남긴 손글씨도 생생하게 전시실을 채우고 있었고, 미녀 응원단의 활약을 담은 컬러사진 수십 장도 전시실에 가득했다.

북한응원단과 동고동락한 연수원 직원은 “연수원 앞에 있는 돼지사육농장의 악취를 놓고 ‘공기가 매우 나쁘다’고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면서 “당시 에쎄 담배를 건넸는데, ‘너무 달아 못 피우겠다’고 했던 기억도 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북측에서 우리가 제공한 세탁기와 간식 등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래서인지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눅눅하다’는 불만을 건네온 응원단도 있었다”면서 “출장뷔페까지 동원해 음식을 제공했는데도 입에 맞지 않다고 한 이들도 많았었다”고 덧붙였다.
▲ 김기만 대구은행 노조위원장이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스아드대회 당시 북한응원단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있다.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2003년 당시 연수원 소속 대리로 근무했던 김기만(49) 대구은행 노조위원장도 추억을 쏟아냈다.

무더위에 심해진 돼지축사 악취를 없애기 위해 대구시가 수천만 원을 들여 약품을 뿌리는 등 부단히 노력했었던 사실과 대회 일곱째 날인 8월 26일 한 종교단체의 대북 비방 차량방송 사건과 숙소 침대에서 동전과 화투가 발견된 사건을 문제 삼아 이틀간 응원활동을 중단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김 위원장은 “연수원 안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일 당시 아찔하기만 했다”면서 “철저한 북한 관계자의 통제 속에서도 간식으로 제공한 컵라면이 가장 빨리 소진되는 등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고 했다. 또 “9월 1일 송환식 때 정들었던 북측응원단을 보내면서 직원 전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2003년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북측응원단 도우미 활동을 했던 김효정(36·여) 대구은행 경산영업부 대리는 “김해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전에 응원단 한 명이 쪽지를 쥐어 주며 울었는데,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손글씨가 있었다”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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