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25·여)씨는 지난해 12월 11일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의 전화를 받았다.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전화였지만, “대포통장에 명의가 도용돼 계좌에 있는 돈을 안전계좌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알려준 가짜 검찰청 사이트에 들어가 본인 명의로 된 사건접수증 형태의 화면을 보고서다. 김씨는 이날 계좌에 있던 150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았고, 수성구 범어동 한 커피숍 앞에서 만난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안전계좌에 잘 보관해달라”고 부탁한 뒤 돈을 넘겼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20대 여성 피해자가 18명에 달했다.

대구 북부경찰서는 16일 검찰·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한 송모(20)씨와 조모(20)씨, 함모(50)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20일께부터 12월 12일까지 18명의 20대 여성에게 검사와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방법으로 속여 2억9천만 원을 직접 받아 가로채 중국 보이스핑 조직에게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가로 손에 쥔 400만 원을 유흥비로 탕진했다.

함씨 등은 부산에 사는 병원 사무장 A씨(37) 때문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작년 11월 29일 보이스피싱 일당이 A씨에게 같은 수법으로 전화를 걸어 대구역 3천만 원을 들고 오라고 지시했고,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직감한 A씨는 경찰과 함께 현장에서 함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함씨의 대포통장 거래 내역을 통해 송씨와 조씨도 검거했다.

20대 여성, 사회경험이 부족한 초년생, 뉴스를 잘 보지 않고 인터넷이나 SNS를 맹신하는 경향. 피해자 18명의 공통된 특성이다.

박정식 북부서 지능팀장은 “과거에는 고령자들이 전화금융사기에 잘 속았지만, 지금은 경로당과 복지관 등에 교육을 잘 받은 덕분에 피해가 크지 않다”며 “오히려 ‘학력이 높고 지식이 많아서 나는 안 당하겠지’라고 자신하는 20대 여성들이 오히려 더 피해를 봤다. 제발 관련 뉴스라도 꼼꼼하게 챙겨 보고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실제 대구경찰청이 2017년 한 해 동안 검찰 등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 성별과 나이를 분석한 결과, 156명의 피해자 중 여성이 82.7%(129명), 20대가 60.3%(94명)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피해자 중 여성이 90.4%(85명)에 달했고, 대부분 수사기관 사칭 수법에 속아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섭 대구경찰청 수사2계장은 “정부기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건에 연루돼 예금이 위험하다면서 금전을 보관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 달라”며 “수상한 전화가 걸려오면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전화를 끊고 경찰 등에 직접 문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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