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환 문경지역 위원회 위원·문경문인협회장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재학 시절인 1968년부터 1976년까지 9년 동안 밤으로 모여 노는 놀이는 어른들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당시 어른들은 농한기인 겨울이면 이집 저집 모여서 낮이고 밤이고 놀았는데, 보통 화투를 쳤고, 정월 대보름이면 방마다 윷을 놀았다. 그 방에는 막걸리에 짠지, 두부, 묵이 안주로 차려 있었고, 끗발이 나거나, 한 사리 할 때마다 막걸리 한 사발에 그 안주들을 큰 입으로 한 입씩 물고 볼이 울룩불룩하도록 주걱주걱 잡수셨다. 유년에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그런 놀이판에서 이 모습을 학습했고, 조금 내 앞가림을 하던 초등학교 3, 4학년부터는 그런 흉내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는 말이 그런 우리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그 시절 우리들의 놀이는 순전히 어른들로부터 학습된 것이었으므로, 나쁜 짓이 나쁜 짓인 줄 모르고 따라 했다.

그중에 모둠밥 해 먹는 일은 길고 긴 한겨울밤 배고픈 우리에겐 신나는 일이었다. 집집마다 쌀을 갖고 한 집에 모여 불을 때서 밥을 지어 해 먹는 일이었는데, 10여 명의 형·누나들과 어울리면 그중에는 밥 잘 짓는 사람, 반찬 잘 만드는 사람, 상 잘 차리는 사람, 설거지 잘하는 사람 등등 어느 누구도 소질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했는데, 학교는 괜히 그런 우리들의 타고난 소질을 억제시킨 것은 아니었는지.

반찬이라야 배추짠지에 씬나물짠지, 굵은 무짠지, 골곰짠지 뿐이었으나, 굵은 무짠지를 길게 네 토막 내 젓가락 한쪽으로 꾹 찍어 들고, 밥을 떠 넣어 한 입 베어 물면 입속에서는 단맛이 절로 우러났다. 또 배추짠지를 포기 밑동만 자르고, 길게 쭉쭉 찢어 밥숟가락에 얹어 먹거나, 잎을 척척 걸쳐 먹으면 몇 번 씹지 않아도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그런데 그 짠지들도 어느 집 무슨 짠지가 맛있다며, 이를 훔쳐 와야 했는데, 그 일이 간단치 않았다. 이것도 순전히 어른들한테 배운 것이었으므로 요즈음 바라보는 범죄와는 결이 달랐다.

나는 주로 이쪽에 소질이 있었는지 짠지 조달 조에 주로 편성됐고, 선수 뒤에 그릇을 들고 따라가 망을 봤다. 그런데 나는 선수가 짠지 독을 열 때부터 망은 고사하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선수가 오히려 나를 달래느라고 이중고생을 해야 했다. 그 웃음은 아마도 겁이 나는 것을 내 스스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슬아슬한 여정을 거쳐 한 방에 모여 밥과 짠지를 차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렸고, 배가 조금 부른 뒤에는 짠지를 구해 오기까지의 무용담으로 반찬을 더했다.

지금은 ‘혼밥시대’라고 한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혼자서 밥 먹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경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공모한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에서 2017년에 이런 시대 흐름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미에서 운영해 관심을 끌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인 가구가 늘어나는데 맞춰 이들이 혼밥을 잘해 먹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모둠밥 해 먹기는 이젠 지난 시대의 사라진 무형문화가 된 것이다. 그만큼 내 나이도 들었단 말인데, 아직 내 기억 속에는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고 있으니, ‘혼밥시대’에 한 번쯤 기록해야 할 지난날 공동체문화의 한 기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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