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부리로 이름을 새기는
저녁을 ‘꽃’이라고 부른다.
눈썹처럼 지친 새가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기 때문,


새들이 하루의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을 ‘등대’라고 부른다.
침묵 속에서 날개를 쉴 수 있는
평안한 안식처가 있기 때문,


집으로 가는 아이들의 발소리에는
백합꽃처럼 맑은 영혼의 냄새가 난다.
그날의 어두운 섬들은 사라지고
서로가 부르는 이름이 따스하기 때문,

(후략)





감상) 저녁이 거기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둠에 당황한 적 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알면서도 첫 비 소리인 듯 설레었던 적 있다. 어쩌다 새 한 마리 날아간 줄 알면서도 누군가 내 마음을 스쳐갔다 말한 적 있다. 고통이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바다를 미워한 적 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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