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로 뇌사판정이 날 경우 장기를 기증하고 남은 육신을 화장하며 재산의 3분의 1 이상은 반드시 이웃사랑과 환경보호에 써달라” 한 퇴임 판사의 미리 작성한 유언장이 공개돼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준 적이 있다. “훌륭한 법관은 하나의 법률지식과 아흔아홉 가지의 사려 깊은 현실인식을 갖춰야 한다”는 법언도 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오직 법률가이기만 한 법률가는 불쌍한 존재”라고 했다. 청빈하고 강직한 것을 미덕으로 삼은 옛 선비형 법관을 지금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 법조계는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한 법관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이어져 왔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6.25전쟁 때 정부가 피난 다니는 판에 대법원장이 아내를 데리고 다닐 수 없다며 부인을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보냈다. 그 뒤 부인이 그곳에서 북괴군에 의해 학살당한 불행을 겪었다. 자유당 시절 대법관들에게 지프 한 대씩을 배정해주자 김제완 대법관은 “휘발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무슨 지프차냐”며 되돌려주었다.

방순원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집행하고 남은 돈을 나눠주자 “재정권 남용이다”며 반납했다. “사물의 본질을 벗어난 편견이나 선입관을 지닌 주의 주장이야 말로 사법판단에서 경계할 대상이다. 보편성을 잃은 주장이라면 아무리 목청 높게 다가서는 여론이라 할 지라도 그로부터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청빈 판사 조무제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후배 법관들에게 한 당부다.

하지만 요즈음 일부 ‘이념판사들’이 분별없고 저속한 언행을 남발, 선배 법관들의 올곧은 ‘법심(法心)’을 부끄럽게 한다. 이 때문에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 재판의 공정성을 우려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판사 전용 익명 게시판에 동료 판사들을 향해 ‘양승태 적폐 종자 따까리들아’, ‘행정처의 개××’ 같은 욕설과 악담이 담긴 글들이 도배돼 “판사 믿고 재판받겠나” 등 비난이 쏟아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법조계 원로들의 한탄도 이어졌다.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천박한 인격을 까발린 판사들을 누가 믿겠나.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