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나?’ 세계 58위 정현이 그의 우상이자 메이저 대회 12회나 우승한 노박 조코비치를 꺾어 8강에 오른 직후 카메라 렌즈에 한글로 쓴 말이다. 정현 스스로 서울의 가장 번잡한 명동 거리에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했는데 이제 전 국민이 그의 당당함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한국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준결승전에 안착한 그에게 우리는 ‘보고 있다’ 열광하고 있다.

24일 호주 멜버른에서 치러진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 준준결승에서 정현은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3-0으로 제압하고 무려 86년 만에 이 대회 남자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가 됐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은 “정현이 역사를 새로 썼다(Chung makes history)” 라 제목을 뽑았고, “정현이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와 조코비치를 차례로 무찌르고 올라왔다”면서 그의 준결승 진출이 명실상부 실력의 결과라고 전했다.

부상에서 돌아와 복귀전을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조코비치를 이겼을 때는 내심 ‘조금의 운이 따랐겠지’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8강전에서 맞붙은 샌드그렌과의 경기에서도 3-0 완승을 거둔 것을 보고는 정현의 승리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실감하게 됐다.

AP통신은 즈베레프와 조코비치를 내리 이기자 정현을 ‘거물 사냥꾼(Giant killer)’이라 불렀고, 테니스 선수로는 드물게 안경을 쓰고 경기를 한다는 이유로 외신들은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또 젊은 나이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아 ‘아이스맨(Iceman)’이란 별명도 얻었다. 대한민국의 영웅이 아니라 세계적인 영웅탄생을 외신들이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국내에서 정현 신드롬이 일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테니스’가 화제고, 만나는 사람마다 ‘정현’에 대한 얘기들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비수기인 최근 2주 새 테니스 용품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0% 이상 껑충 뛰었다. 정현이 피겨와 수영의 김연아, 박태환처럼 일약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스물두 살 청년 정현이 어디까지 뛰어 오를 지 눈을 비비고 봐야겠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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