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어둠의 기미로 달콤하다


잣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은 내 얼굴을 빌려 저녁이 뿌리는 물뿌리개의 물방울들을 촘촘히 다 들이마신다


나뭇잎 사이마다 어둠이 출렁여도 밖으로 난 숲길 한 쪽은 아직 환하다. 연한 어둠의 파란에 둘러싸여 나는 몸에 천천히 붕대를 감는다


당신도 언젠가 이 숲에 왔을 것이다
숲은 폭풍의 예감으로 일렁이고 있다


당신도 이 숲에서 심장을 움켜쥐어보았을 것이다
바람이 손바닥의 붉은 꽃잎들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후략)





감상) 그 숲을 찾아 나선 적 있다 아무리 찾아도 나무만 있을 뿐 숲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언덕길을 다 돌아 나와 뒤돌아봤을 때에야 숲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다음부터는 숲을 찾아가지 않았다 내안의 그보다 더 짙푸르고 어두운 것이 나를 숲으로 보내주지 않았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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