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경과 신성시 하던 남산 사이에 흐르는 모기내(문천·蚊川)에는 물로 인해 빚어진 연분(緣分)의 전설이 흐른다. 일곱 아들을 둔 어미가 강 건너 마을에 정부(情夫)를 두고 아들들이 잠든 밤에 몰래 다녀오곤 했다. 이를 알아챈 아들들이 의논해서 어머니가 밤에 물길을 건너다니는 것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돌다리 놓았다. 어미는 아들들이 놓은 다리를 보고 부끄럽게 여겨 밤 마실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 다리를 효불효다리(孝不孝橋)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동국여지승람에 전한다. 이 전설에 나오는 다리를 일정교라고도 한다.

문천도사(蚊川倒沙), 모기내 모래가 너무나 부드러워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모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 내에는 또 하나의 다리 전설이 있다. 신라 고승 원효와 요석공주의 이야기다. 출가한 신분의 원효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을 바칠 기둥을 세우겠다(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株)” 노래를 지어 부르고 다녔다. 원효의 욕망을 알아 챈 태종무열왕은 요석공주를 내 주었다. 궁의 관리가 원효를 찾아갔을 때 원효는 때마침 모기내다리(문천교·蚊川橋)를 지나다가 풍덩 물 속에 빠진다.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요석궁에 든 원효는 공주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 신라 10현의 한사람인 설총이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만남을 메마른 감정의 사람은 속된 야합(野合)이라 하고, 혹자는 범부의 모습으로 나타난 부처의 이타행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어처구니 없는 도끼로 하늘을 떠받친 기둥을 끊어내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사자후라고도 한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서린 이 모기내다리를 월정교라고도 한다. 월정교는 통일신라 경덕왕 19년(760년)에 건립했고,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경주시가 월정교를 복원해 다음 달 1일부터 누구나 건너다닐 수 있게 한다. 월성에서 이 다리를 건너가면 남산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길이가 66m나 되고 다리의 양쪽에 문루가 있다. 유난히 남녀의 애틋하거나 당찬 사랑의 전설이 흐르는 문천 위를 유유자적(悠悠自適) 거닐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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