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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경상도의 뿌리 고향 상주를 떠나 한강 이남 내륙 최대 도시 대구의 명물 건들 바위 앞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둥지를 턴 지도 5년째다. ‘자주 보면 이웃사촌, 정들면 고향’이라며 낯설었던 대구도 ‘세월이 약’이라고 달력이 여러 장 넘어가니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건들 바위는 아담하고 삐쭉하게 서 있는 선돌(立岩)로 바람이 불면 마치 흔들 이듯이 건들건들한다고 ‘건들 바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북향 반월당 봉산육거리에서 앞산 남구청으로 쭉 뻗은 대로 따라 남향으로 부는 바람 새고 매섭다.

달리는 전망대 도시철도 3호선을 타고 도시철도 1호선 환승역인 명덕역과 노을이 지면 생각나는 가수 ‘김광석 길’로 가는 신천 대봉교 역 중간에 건들 바위 역 아래 건들 바위가 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2호로 고생대에 암벽의 균열로 생긴 입석으로 옆에 높은 절벽과 더불어 대구분지의 지반구조를 잘 나타내는 오래된 바위다.

삿갓 쓴 늙은이와 같다 하여 또한 ‘삿갓바위’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이곳은 맑은 물이 흘러 낚시를 하면서 즐기던 경치 좋은 명소였다고 한다. 서거정(徐巨正)의 대구 십경(大邱十景) 중의 입암조어(笠巖釣魚) 시제(詩題)가 바로 이곳이다. 정조 때 대구 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쌓아 물줄기를 지금 인근 신천(新川)으로 돌렸기 때문에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가마솥더위를 식히는 인공폭포수는 있다.

내 고향 상주도 시가지로 흐르며 범람하던 냇가를 제방을 쌓아 외각 북천(北川)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는 대구 건들 바위의 도심 물길을 신천(新川)으로 돌린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금도 땅을 파면 모래흙이 흔하다는 이야기는 물줄기가 지나갔다는 의미다.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고조선 건국신화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의 경천애인은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을 숭배하는 원시 신앙인 샤머니즘이 우리나라 국민은 몸에 배어있다. 새벽에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기도 하고, 암자에다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비는 소박한 민족이다.

건들 바위의 주변은 종교 천국이다. 주변으로 불교 방송, 절, 하느님 교회, 대봉동 성당, 대봉동교회, 대성교회, 원불교, 굿 하는 무당, 점술가, 신수 사주보는 것까지 다양하게 즐비하다. 어떻게 보면 온갖 신이 다 모여 있는 중구가 백 년 된 성모당까지 있어 대구가 따뜻하고 천재지변이 없는 축복 받은 명당이다. 살기가 좋아 노인왕국으로 갑부도 많다.

내가 어릴 때 근대화 시절만 해도 아기를 갖고 해 달라며, 병을 낫게 하거나 소원성취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비는 일. 제물을 차려 놓고 그 앞에서 양손으로 비비는 행위를 통해 일종 비손하는 곳이 건들 바위라고 한다.

역이 생겨 주·야간 환한 건들 바위 네거리는 계획 중인 봉무-파동 도시철도 4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 예정지로 반월당, 범어, 두류, 신남, 명덕네거리와 같이 주변에 재개발 아파트 단지 붐으로 대구 심장부 변신이 기대된다. 예비타당성 중인 도시철도 3호선 범물동 용지역에서 대구스타디움∼신서혁신도시까지 연장사업도 승인되어 진행 중인 대구 도시철도 대중화 앞당겨지길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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