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부식 포항문인협회장
이월 첫날, 김만수 시인의 시집, ‘풀의 사원’을 들고 산책에 나섰다. 포은중앙도서관이 마련한 ‘2018 도서관 아침 산책’ 자리. 그렇게 맵던 맹추위가 풀려서인지, 시인의 얘기가 듣고 싶었는지, 70여 시민들도 아침 산책에 같이 나섰다. 이수빈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건반 위로 아침 햇발처럼 가벼이 거닐자 상큼했다.

진행자인 김살로메 소설가가 물었다. 그간 시인으로 어떻게 사셨느냐고. 김 시인의 목 굵은 소리에 마이크가 흔들리며, “1987년 실천문학에 장편 시 ‘송정리의 봄’을 발표하면서, 시집 ‘소리내기’를 펴낼 때는 젊은 교사였고, 사회 변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였다”고 했다. 김 시인은 그 어둡고 답답했던 시대에 문우들과 어울려 울분을 터뜨리고 시를 썼다. 이후, ‘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 ‘오래 휘어진 기억’, ‘산내 통신’, ‘바닷가 부족’ 등 그의 시들은 고향 포항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인에게 소중했던 건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대동고 국어선생으로, “바르게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그들로부터 “더불어 사는, 사람됨의 반응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한다. 이달 말, 대동중학교 교장으로 37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다. 시인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현재 중학생은 여전히 위험하다. 간식에서부터 폰, 담배 등 여러 가지 중독에 노출된 아이들이다. 하지만 희망 또한 있다. 교사들의 애씀과 사랑이 있고, 아이들은 그걸 알기 때문이다”고 했다. 시인을 여기까지 밀고 온 건 시를 쓰고자 방문 걸어 잠근 늦은 밤의 욕망, 학생들의 행복을 바라는 교단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만수시인 ‘풀의 사원’ 출판기념회
사회가 시인을 짧게 평했다. “시인의 성실성, 시의 균질성을 지닌 시인”이라고 했다. 시인은 “가슴 뜨겁고 목소리 높았던 시대를 지나, ‘풀의 사원’은 주변에, 남이 보지 않는, 들키고 싶지 않는 많은 사물과 사람들 곁으로 다가간,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들이다”고 했다.

박기영 시 낭송가가 시 편들을 골라 읊었다. ‘사소함에 대하여’. ‘근처’, “오랫동안 근처에 머물며/ 근처를 많이도 베껴 썼다…/ 어머니 근처에는 다시 어머니가 있고/ 겨울 근처에는 시린 북벽(北壁)과/ 대학사 투명 유리 모서리가 있고/ 나도 누군가의 희미한 근처로 머물러 있는 걸까/ 근처에 독한 에스프레소와 순정한 사랑이 있고/ 근처의 근처들 늘 거기 그렇게 편하다…‘며 낭송하는 이가 피아노 의자 근처를 느릿느릿 돌면서 시를 읊었다. ‘쑥국’.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산을 깊이 넘어가신 걸까/ 기립(起立)과 망치와 밧줄/호명(呼名)과 기도와 뺀찌/ 하모니카와 무인(拇印)…/ 봄 깊고 쑥국 끓는데/ 한 번도 오시지 않으시는/ 아버지” 하면서 시 낭송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산책자들은 속으로 ‘아- 아버지가 바람피우다가 저녁에 끓여놓은 쑥국 안 드시러 오셨나 보다’ 했다. 하지만 시인은 “망치, 뺀찌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의 연장이었고, 돌아가신 뒤 제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계셔서…”라며 시작(詩作) 배경을 얘기하며,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한 시인이 눈시울 붉힌’, 아침 산책이었다. “간밤에 흘린 눈물 여전히 쓰리다. 아침에 흐르는 눈물 마알간 볕살이 말린다”며 포은중앙도서관 문을 밀고 나왔다. 평화롭고 너른 풀밭에 거닐던 아침 산책자들도 다음 달 포은중앙도서관의 아침 산책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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