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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 박사 등록일 2018년02월04일 16시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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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 박사
‘6월 항쟁’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말로만 듣던 남영동 대공 분실을 영화로 보면서 고문을 당했던 끔찍한 참상에 괜스레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당시 열심히 직장을 오가며 사회생활을 하던 우리 세대의 ‘6월 항쟁’은 최루탄 범벅과 넥타이 부대 그리고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던 함성의 기억이다. 백골단의 흰 헬멧과 경찰봉 그리고 깨어진 보도블록, 시위와 폭력이 난무하던 ‘6월 항쟁’은 우리 국민 모두의 상처이며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다. 영화에서 보듯 정부수립 후 9차 개헌의 시발점이었던 민주항쟁은 권력자의 야욕으로 빚어진 참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화에 기여하며, 시민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효과와 우리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온 계기였기도 하다.

‘영화 1987’은 88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둔 30년 전의 이야기이다. 유수의 세월 속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지금, ‘영화 1987’이 새롭게 조명되는 까닭은, 지난날 부도덕한 정부와 위정자들의 민낯을 영화에서 발견하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결코 하지 못했던, 슬프고 뜨거웠던 민주화운동의 발자취를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숭고한 시민운동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험에서 성장하며 변화한다. 사회, 사물, 마찬가지이다. 변화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 모든 사물은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 따라서 변화하는 이유는 그 목적이 분명하다. ‘6월 항쟁’의 목적은 호헌철폐와 독재 타도이다. 6·29선언과 직선제개헌으로 당시의 목적은 달성하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목적 투쟁을 위해 피 흘린 보상의 대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성장하였으며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생각한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사태의 후유증이 전·전 정권으로 이어지는 요즘, 그동안 권력의 중심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한 다수의 위정자들이 좌불안석이다. 개인의 권력과 영달을 위해 국민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속임수의 임계점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수수방관한 국민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가적 탄핵의 혼란 속에서도 위정자들과 사회지도층, 누구 하나 ‘결자해지’ 없는 무책임한 모습과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는 철면피한 행동에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철학자 플라톤의 명언을 상기하게 한다. 그동안 정치를 외면하고, 침묵하며, 바르게 보지 못함으로, ‘사이비 정치’에 세뇌당한 ‘우민’의 대가는 현재 진행 중이며, 사회 전반에 걸친 적폐의 대상이다. 결국, 1987년 ‘6월 항쟁’이나 2017년 ‘촛불 혁명’이나 30년의 긴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건 위정자들뿐만이 아니라 국민도 마찬가지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참가 결정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이 평양올림픽이 되었다는 폄훼와 비방공세가 한창이다. 북핵과 미사일위협에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던 일촉즉발의 한반도 긴장위기 상황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로 잠시 대화의 국면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모으기는커녕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에 찬물을 끼얹고 국론분열을 부추기는 일부 야당의 행태는 국민의 불안을 고조시키는 일종의 몽니이다. 국가적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관점에서 ‘평창올림픽’이라는 협상 테이블은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화합의장이며 평화통일을 향한 국면전환의 기회이다. 스포츠를 통한 협력과 교류증진은 북한에 대한 변화의 손짓이며 서로 다른 목적추구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부디 모두가 힘을 모은 국론통합으로 성공한 올림픽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간디의 어록 중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가 있다면 너 자신이 그 변화가 되라’는 말은 내가 변해야 모든 것이 변한다는 말이다. 정치변화에 침묵하며 바르게 보지 못하므로 빚어졌던 현대판 중우정치는 부활의 기회만 엿보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다. ‘영화 1987’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으며 다행히도 세상은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음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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