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목공이 다스리는 진나라에 기근이 들어 혜공에게 식량 원조를 요청했다. 혜공은 원조받았던 식량을 되갚아 주는 대신 기근을 틈타 진(秦)나라를 침공하는 배은망덕을 저질렀다. 목공의 군대에 쫓겨 후퇴하던 혜공을 뒤쫓던 목공이 혜공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해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 이때 갑자기 300여 명의 무리가 혜공의 군대로 돌진, 목공을 위기에서 구하고 혜공도 사로잡았다. 난데없이 나타난 300명 무리는 기산 아래 사는 진나라 백성들이었다.
일찍이 목공이 준마 몇 마리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그 말들을 잡아먹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관리가 이들을 잡아다 법대로 처벌하려 하자 목공이 말했다. “좋은 말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이 상한다면서 이들 모두에게 술을 내리고 용서해 준 적이 있었다. 결국 이들 300명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목공을 구해 줌으로써 목공의 넓은 도량에 결초보은 했던 것이다. 이 고사에서 ‘식준마지육(食駿馬之肉)’이란 성어가 생겼다.
목공은 포로로 사로잡은 혜공을 처형하려고 했으나 혜공의 누이인 자신의 부인의 간청으로 혜공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귀빈으로 대접한 후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자신의 준마를 잡아먹은 백성들을 용서하고 자신에게 배은망덕을 밥 먹듯이 한 정치적 라이벌까지 용서한 목공의 도량과 포용력이 돋보인다.
‘정도로 원수를 갚고 덕으로서 덕을 갚는다(以直報怨 以德報德)’고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을 목공이 실천, ‘춘추오패(春秋五覇)’로 군림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직보원 이덕보덕의 정치’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