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휴먼스토리] 정도너츠 창업주 홍정순 조리장

36년 전통의 맛 고집···전 국민 영양간식 자리매김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2월05일 21시07분  

▲ 하루 400만 개 이상 팔리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정도너츠 창업주 홍정순 조리장이 손수 만든 100% 찹쌀 생강도너츠를 드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황금빛 찬란한 데 윤기마저 감도는 동그란 얼굴을 수줍은 듯 샛노란 조각들로 가렸다. 가로 5㎝, 세로 7㎝, 45g의 타원형 몸을 살짝 꼬집었더니 쫀득한 찰기가 느껴졌다. 입속에 넣자마자 알싸한 생강 향기가 퍼졌고, 숨어 있던 단팥 알갱이가 침샘을 자극했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매력이 있었다. 100% 국내산 찹쌀을 재료로 손으로 직접 만드는 ‘정도너츠’ 이야기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탄생한 정도너츠는 외국산 브랜드를 당당히 누르고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400만 개 정도 팔려나간다. 16가지 종류로 진화한 정도너츠를 낳은 이는 홍정순(63·여) 조리장이다. 한 해 평균 40억 원 매출을 자랑하는 잘 나가는 사업체의 주인이 됐지만, 심하게 휘어버린 그의 손가락은 굴곡진 지난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봉화군에서 태어난 홍씨는 한 살 때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6살 때 어머니마저 다른 곳으로 시집가버렸다. 큰아버지 밑에서 식모처럼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장만 겨우 손에 쥐었다. 너무 힘들어서 탈출해야 했다. 15살 때 강원도 태백에 살던 재혼한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1년 뒤 부산에 내려갔고, 방직공장에서 2년 동안 죽기 살기로 일했다. 19살에 다시 어머니가 있는 태백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호떡 노점을 했고, 남편 황보 장(72)씨를 만났다.
정도너츠 창업주 홍정순 조리장의 휘어버린 손가락

한 차례 유산 후 아들, 딸을 낳고 호떡을 팔아 모은 돈으로 우유 대리점을 시작했다. 하지만 빚만 잔뜩 짊어지고 서울로 향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네 식구 잠잘 곳조차 없어서 여관에서 생활했다. 여관 청소일을 하며 숙박비를 구할 정도였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제과제빵 재료상에서 배달일을 하던 남편이 만두와 찐빵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풍찬노숙과 같은 서울생활을 접었다. 남편의 고향인 영주시 풍기읍의 양계장에 딸린 방에 네 식구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4만 원의 월급으로 버티고 버텼지만, 너무 힘들어 일가족 모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자라났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 30만 원과 남편의 사촌이 보탠 10만 원을 합해 ‘정아분식’을 열었다. 뱃속에선 셋째가 자라고 있었다. 남편이 자신을 부르던 애칭을 담은 분식집에서 만두와 찐빵, 꽈배기와 밀가루 도너츠 등을 팔았다. 홍 조리장은 “어린 시절에 강원도에서 생강을 입힌 밀가루 도너츠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면서 “가루 대신 찹쌀로 도너츠를 만들면 더 좋을 것 같아 만든 게 정도너츠의 출발이다”라고 설명했다.
하루 400만 개 이상 팔리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정도너츠 창업주 홍정순 조리장이 손수 만든 100% 찹쌀 생강도너츠를 드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가족 모두의 특성도 고려했다. 밀가루 대신 찹쌀을 쓰면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딱딱해서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무거운 소스와 생강 고명을 도너츠 표면에 입히는 힘든 작업도 그쳤다. 대신 홍 조리장의 손가락은 류머티즘을 앓는 이처럼 휘어 버렸다. 1983년 1년의 시행착오 끝에 ‘정도너츠’의 시그니처인 ‘생강도너츠’가 탄생했다.

2008년 ‘풍기 정아 생강도너츠’에서 ‘정도너츠’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에서 사랑받는 지금, 홍 조리장은 경영은 아들에게 맡기고 36년 전통의 맛을 그대로 이끌어가고 있다. 전국 24개 가맹점과 3개 직영점에서다.

최근에는 초콜릿 안에 무농약 인증을 받은 6년근 홍삼 농축액을 넣어 만든 제품을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정아분식 초기에 인기를 끌었던 만두 제품도 다시 내놓기 위한 준비도 마친 상태다.

홍정순 조리장은 “역경이 있었기에 지금의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고달팠던 지난 세월이 후회되기보다는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 경북일보 & kyongbuk.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준수 기자

    • 배준수 기자
  • 법조, 경찰, 대학, 유통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