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내면


사랑의 축제를 위해

당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에

어느 길모퉁이에서

늙은 거지 여인을 보았네.

그녀의 손을 잡고

가녀린 뺨에 키스를 했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나와 똑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었네.

나는 그것을 금방 알아 차렸네.

개가 냄새로 다른 개를 알아보듯이

그녀에게 돈을 주었지만

그녀 곁을 떠날 수 없었네.

결국 사람은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당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갈 이유를 알지 못했네.



감상) 밤이 되도록 걷지 않은 옥상의 빨래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를 피하지 못하고 헤매는 늙은 개가, 갈 곳 몰라 떠도는 검은 비닐봉지가, 도로가에 남은 운동화 한 짝이, 그런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런 것들 어디에 나와 닿은 것이 있는가 생각하다. 어떤 저녁에는 아무도 쓰지 않는 공중전화 박스 옆에 웅크려 앉기도 한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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