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선수를 같은 라인에 넣는 전략으로 결속력 높여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휴식일인 8일 강원도 강릉 경포 해변을 찾아 오륜마크 조형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달 12일 미국 미네소타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패닉에 빠졌다.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회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선수들보다 나흘 늦게 입국한 새러 머리(30·캐나다) 감독은 “충격적”이라고 했다.

머리 감독은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남한 선수든, 북한 선수든 새로운 선수가 합류하는 것은 팀 조직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단일팀 구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 대표팀 선수 23명은 지난달 25일 북한 선수 12명과 처음 만났다.

남북은 머리 감독에게 전권을 약속했지만, 단일팀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경기당 북한 선수가 3명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서로 손발을 맞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북한 선수 중에 쓸만한 선수가 드문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북한 선수 3명을 4라인에 몰아넣는 것이었다.

머리 감독도 단일팀 결성이 확정된 뒤인 지난달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선수들은 4라인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총 6명이 한 팀을 이루는 아이스하키에서 골리를 제외하고 3명의 공격수와 2명의 수비수로 이뤄진 한 조를 라인이라고 한다.

보통은 1라인부터 4라인까지 나눠 경기에 나서는데, 머리 감독은 대부분 경기에서 거의 1∼3라인만 돌렸다.

4라인은 1피리어드에 잠시 모습을 보였다가 2∼3피리어드에서는 거의 벤치에만 앉아 있었다.

단일팀의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머리 감독에게도 덜 수고스러운 방법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오히려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머리 감독은 먼저 북한 선수들을 위해 라커룸 환경을 바꿨다. 북한 선수의 라커를 남한 선수들 사이에 배정했다.

우리 선수들에게는 북한 선수들이 전술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곁에서 설명해주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남북 합동 훈련에서는 북한 선수들을 라인마다 1∼2명씩 섞어놨다.

실제로 지난 4일 스웨덴과 평가전에서는 2라인에 정수현, 3라인에 려송희, 4라인에 김은향과 황충금 등 북한 선수 4명이 라인마다 골고루 포진했다.

이로 인해 단일팀의 경기력이 기존의 한국 대표팀보다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단일팀은 하나가 됐다.

남북 선수들이 같은 라인에 들어가면서 선수들은 싫든, 좋든 서로 소통해야 했다.

그렇게 같은 라인에서 함께 얼음을 지치고 땀을 흘리며 호흡을 맞춰간 남북 선수들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제는 고된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힘든 기색보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박윤정과 이진규는 북한 선수 김은향을 붙잡고 함께 셀카를 찍고, 북한 선수들은 자기도 모르게 ‘방탄소년단’, ‘레드벨벳’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머리 감독은 지난 8일에는 아예 훈련을 건너뛰고 강릉 경포대로 ‘바다 나들이’에 나섰다.

보안 문제 탓에 선수촌과 숙소만 오가는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답답해하던 북한 선수들은 탁 트인 바다를 보고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단일팀은 무늬만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단일팀이 됐다.

이제 단일팀은 그동안의 논란을 뒤로하고 올림픽 여정을 시작한다. 단일팀은 10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스위스와 평창올림픽 B조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머리 감독은 9일 “스위스전에는 2∼4라인에 북한 선수 1명씩 출전할 예정”이라며 “이제 우리는 한가족이고 한팀이 됐다. 우리는 정치적인 주장을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출사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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