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느니 되돌아가는 것이 낫다”, “천천히 운전할수록 더 멀리 갈 것이다” 유엔 안보리 대표 시절 잦은 거부권행사로 ‘미스터 니에트(Mr No)’란 별명을 얻은 구 소련 외상 그로미코의 외교 명언이다. 외교의 달인 그로미코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권투와 외교를 대조적인 게임으로 설명했다.

권투가 철두철미하게 주먹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힘의 게임’이라면 외교는 서로 간의 이해절충과 합의점을 이끌어 내는 ‘타협의 게임’이라 했다. 그로미코는 외교협상에서 러시아 속담을 자주 인용, 상대를 웃기면서 정곡을 찔렀다.

러시아 문화에 바탕을 둔 외교전략을 구사 ‘자는 척 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외교 9단이었다. 그로미코는 외교협상을 빗대어 “어느 시장에서나 두 바보가 있다. 너무 많이 값을 부르는 사람과 너무 적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뒷북외교’, ‘함량 미달 외교’로 자주 물의를 빚는 우리 외교를 되돌아보게 하는 명언이다.

근세 유럽외교서 ‘비스마르크시대’를 연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도 외교의 달인이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긴 독일은 프랑스의 보복위협을 받고 있었다. 프랑스는 앙갚음하기 위해 호시탐탐 독일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황제를 설득, 3제동맹(三帝同盟)을 성사시켜 적의 외교관계를 차단 시켰다.

그 후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3제동맹이 흔들리자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간의 3국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러시아와도 비밀조약을 체결, 프랑스와 전쟁을 할 경우 중립을 보장받았다. 만약 러시아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게 되면 독일엔 등 뒤의 비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유럽은 ‘비스마르크시대’라고 불려 진 안정이 지속 됐다. 비스마르크 외교의 핵심은 쓸데없는 적을 만들지 않고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데도 성급한 3불(不)외교와 대북봉쇄 역주행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미동맹의 파열이 우려되고 있다. 그로미코와 비스마르크의 외교 지혜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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