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만세운동의 효시"···‘3·11 운동 100주년’ 기념비 추진
매전면 장연리서 주민·출향인사 등 뜻모아 내년 제막식 열기로

매전면 장연리 주민들이 ‘장연리 3·11 독립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의 경과보고를 듣고 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기미(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 난지 99년 만에 후손들에 의해 만세 함성이 울려 퍼져 잔잔한 울림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설날 연휴가 시작하기 바로 전날 일본 문부과학성이 고교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왜곡한 내용을 수업하도록 명시,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지역의 기미 만세운동을 재조명,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오후 2시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마을회관(경로당)에서는 마을 어르신, 출향인사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전면 장연리 3·11 독립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순주·이원희)’가 열렸다.

이날 총회에서는 장연리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역사자료를 발굴하고 기념비 건립을 최초 제안한 김진태 연구위원의 설명회를 시작으로, 경과 보고 그리고 안건심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진태 연구위원은 “청도는 교통 통신의 외진 지역적 여건으로 인해 3·1 운동이 즉시 전파되지 못하고 있다가 산동 지역에서부터 자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의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 매전면 장연리 기미년 3·11 대한독립 만세운동이고 청도군 만세운동의 효시다”고 설명했다.

1919년 3월 11일 마을에 사는 농민 김집이(28)가 사람들로부터 전국 독립 의거 소식을 전해 듣고 같은 마을 노이만(34), 이선이(32), 이작지(30), 이용술(31), 최두천(27), 이학천(29), 배돌이(30·이상 당시 나이) 등과 함께 이날 오후 9시와 다음 날 오후 9시 야간에 2차례에 걸쳐 연인원 100여명의 주민들을 동원 동네를 누비면서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경찰 주재소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인지하고 주동 인물을 탐문해 주동자 이선이, 이작지, 이용술, 최두천, 이학천, 배돌이 등 6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고문 후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됐다가 불기소로 석방됐고, 김집이와 노이만은 도주했다가 노이만만 검거돼 보안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김집이는 행방불명됐다는 것이다.

매전면 장연리 경로당에서 김진태 연구위원이 주민들과 후손들에게 문헌 자료등을 근거로 당시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김재민 기자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는 “선조들의 활동을 기억하고 기념비로 남기자는 것이 건립취지다”며 19일 청도군청에 청도군 소유의 매전면 자연생태공원 내에 기념비 건립부지 사용 승낙을 청원하기로 했다.

이원회 공동추진위원장(장연리 이장)은 “장연리보다 늦게 일어난 군 내 다른 지역의 항일운동은 기념관이나 기념비가 세워졌는데 반해 이곳에는 아무런 표지 하나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며 “주민과 출향인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월 11일 기념비를 제막,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민 수습기자 kjm0141@kyongbuk.co.kr

김윤섭 기자
김윤섭 기자 yskim@kyongbuk.com

경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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