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가 평창 겨울올핌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놓쳤다. 이상화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한 이후 은퇴를 고민한 적이 있다. 3연패를 기대했지만 아쉽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간의 회한으로 울음을 감추지 못한 이상화에게 금메달을 딴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다가와 서툰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우러러 보며 20대 청춘을 다 보내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비로 네덜란드 유학을 다녀왔다. 올해 32세의 그녀는 오직 이상화를 꺾는 것이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경기장에서는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빙상 밖에서는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이상화는 “내가 일본에 갈 때는 고다이라가 언제나 돌봐줬다”고 했다. 고다이라는 “서울에서 경기가 끝난 후 급히 다른 나라로 갈 일이 있을 때 이상화가 직접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대신 내줬다”는 일화를 얘기했다.

한국과 일본은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돼 있다. 그러나 두 빙속 여제의 어깨동무는 라이벌이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에 앞서 설날 아침 온 국민에게 ‘금빛 세배’를 한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도 감동을 안겼다. 그는 우상이자 최대 라이벌인 라트비아의 마르틴스 두쿠르스를 넘어섰다. 윤성빈은 4위에 그친 두쿠르스에 대해 “그는 아직도 나에게는 우상이다. (올림픽에서 이겼다고) 내가 그 선수를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고교 3년생이던 2012년 스켈레톤 입문 때부터 윤성빈은 ‘스켈레톤계 우사인 볼트’인 두쿠르스의 기술을 배우고 따라 하며 성장했다. 윤성빈은 마침내 우상을 뛰어넘은 후에도 경의를 잃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따뜻한 인간애로 감싸 안은 것이다.

선수에게 라이벌과 우상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자양이다. 위대한 선수들은 누구나 한 두 사람의 우상을 갖고, 그 사람을 따라하고 마침내 극복해 낸다. 그 과정에는 반드시 동력이 되는 라이벌도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우상과 함께 경기를 펼치고, 라이벌과 경쟁을 벌이면서도 아름다운 스포츠정신을 보여주는 명장면들이 연출돼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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