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jpg
▲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어제 동네 병원에 들렀다. 4층 건물이고 주로 입원환자를 받는 곳인데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이 병원 이사장을 만나 왜 설치 안 했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말할까. 참사 직후에 밀양 세종병원 송아무개 이사장은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면적이 안 돼 없었다”고 했다. 비슷한 규모의 병원 운영자는 거의 다 똑같이 말할 것이다.

모든 게 돈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의무화되어있지도 않은데 환자와 고객의 안전을 위해 일부러 안전설비를 갖추는 사람은 천명에 한 명 사람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사업자의 선의에 맡겨서는 시민안전은 보장될 수 없고 그런 방식으로는 안전시스템은 영원히 확보되지 않는다.

4년 전에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에 화재가 나서 21명이 사망했다. ‘병원에서 안전’이 크게 문제가 되었고 정부와 국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높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근본적인 대책을 내겠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모든 병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법을 만들지 않고 요양병원과 정신의료기관에만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고 일반병원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하여 스프링클러 사각지대로 방치했다.

소방시설법(시행령 15조)은 △층수가 6층 이상이거나 △층수가 4층 이상이면서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인 병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빈자들과 서민들이 이용하는 소형, 중형 병원을 화재에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만든 법률이다. 밀양 세종병원도 5층 높이에 한층 바닥 면적이 395㎡이어서 의무대상이 아니다.

건물주와 건축업자, 건축자재업자의 표를 의식하고 자신의 ‘지역구에 예산 따기’에 매몰된 나머지 경제논리를 앞세우고 사람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쳐놓은 국회와 정부에게 책임이 크다. 이들 국가기관의 ‘반 안전’ 의식과 안전법률 제정 회피가 밀양참사를 야기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국회와 정부의 직무유기 때문에 야기된 참사인 것이다. 생명안전의 관점에서 볼 때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범죄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위험에 빠트린 자신의 잘못에 대해 희생된 사람들과 유족 그리고 국민에게 사죄부터 해야 한다.

발화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 설비를 비롯한 안전설비를 안 갖추게 만든 것은 참사에 이르는 길을 열어준 거나 마찬가지다.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시민의 안전을 위험에 빠트린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단순한 직무유기를 넘어 생명을 스러지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밀양참사 이후 정부는 건물 ‘규모별로’ 소방 설비 대상을 정한 소방법을 ‘용도별로’ 정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라고 한다. ‘규모’를 ‘용도’로 바꾸면서 또 다른 안전사각지대를 남길 생각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말이다. 밀양참사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병원 도는 일부 병원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으로 미봉하고 넘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화재에 더욱 취약한 병원과 학교는 물론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예외 없이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기존 건물도 포함시켜야 한다. 기존 건물은 모든 면에서 화재에 더욱 취약하다. 취약한 곳을 먼저 살펴야 국민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신축건물에만 적용하고 기존건물은 배제하면 똑같은 참사가 거듭될 것이다. 안전 약자들이 계속적으로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주요 정당의 원내외 대표들과 주요 인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국회는 ‘예외 없는 스프링클러법’을 만들 의지가 전혀 없는 듯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29만 곳 안전대진단’한다고 요란 떨 때가 아니다. 이미 재발방지책은 나와 있다. 다중이용시설과 복합건물, 집합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예외 없이 설치하는 법률부터 제정하라. 안전에 관한 투자라면 국민도 더 지출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