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 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감상)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독서실이라는 데를 갔다. 시내에 있는 그곳에서 밤을 지세우고 첫차를 타고 동네로 들어서는 방죽에 올라섰을 때, 장독대에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져 급하게 집으로 들어섰다. 연탄불 위 노란 양은 냄비에 밥이 뜸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지은 밥이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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