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여겨진 때가 있었다. 명절 끝이나 방학이면 한 번씩 시내에 있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당시에는 “영화보러 가자”라는 말 대신 “극장 구경 가자”고 했다. 요즘처럼 4D 영화관이니 멀티플렉스니 하는 깨끗한 상영관이 아니라 발밑으로 쥐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극장’이었다. 이곳에서는 간간이 연극이 공연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21세기, 시대가 확 달라졌고 공간도 달라져 이제 “극장구경 가자”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처럼 나이가 지극하든 젊든 간에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는 ‘극장’, ‘영화관’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극장에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극장 하나가 간판을 내린다고 한다. 대구좌(대구극장), 영락관(자유극장), 신흥관(송죽극장)에 이어 만경관이 간판을 내린다고 한다. 

만경관(萬鏡館)은 일제 강점기 1922년 대구 최초로 설립된 조선인 자본의 극장이다. 예전에는 무대 공연과 집회가 열리던 대중문화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는 대구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됐고, 전쟁 이후에는 미 군정의 신탁통치에 반대, 여자국민당경북지부가 1953년에 결성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만경관은 대구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만경관은 대구 사람들로부터 ‘향토극장’으로 불린다. 이 만경관이 4월 30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22년 개관 후 100년이 다 돼가는 96년 만이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속속 들어오면서 경영난이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정 인건비가 갑자기 늘어나 감당이 어려웠다고 한다. 만경관은 폐업 후에도 영화관으로 계속 운영될 예정이라 한다. 하지만 개인사업자가 임차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만경관은 잊혀지게 됐다. 

서을 명동에서 대를 이어 맞춤양복점을 운영하는 사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나요, 역사를 돈으로 살 수 있나요” 반문하던 말이다. “친구야, 극장구경 가자”며 만경관에서 추억을 쌓았던 대구 사람들이 섭섭하게 됐다.
이동욱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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