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있었다지, 온 생애를 그렇게
단풍 차린 잎들이 떨어지며
는실난실 휘감겨와도
그 잎들 밤새 뒤척이며 속삭였건만
마른풀들 서로 몸 비비며
바람 속으로 함께 가자 하여도
제 그림자만 꾹 움켜잡고
엎드려만 있었다지.


설움도 외로움도 오래되면 둥글어지는 걸까
제 속 가득 씨앗들 저리 묻어두고
밤낮으로 그놈들 등 두드리며
이름도 없이, 주소도 없이 둥글게 말라가
고 있었다지.


늙은 호박을 잡아
그 둥글고 환한 속을 본다
사리처럼 박힌
단단한 그리움.




감상) 외람되지만 어제는 딸아이가 애호박전이 먹고 싶다고 전화를 했어요. 나는 마트로 가서 금방 목욕시킨 갓난쟁이처럼 말쑥한 호박 두 개를 골랐어요. 그런데 집에 와 호박을 싸고 있는 비닐을 벗기다 알게 되었어요. 그 어린 호박이 저를 싸고 있는 비닐을 벗어던지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나는 그것을 접시위에 얹어놓고 아직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요.(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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