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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우리는 그동안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수도 없이 보았다. 언론이 보여주는 기사의 흐름은 한결같다. 먼저 참상을 보여준다. 그다음에 사망자가 몇 명이고 부상자는 몇 명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경찰에 따르면 운전자의 졸음운전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경찰은 운전자를 입건할 방침이다’또는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생명을 다루는 운전자는 특별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졸음운전 교통사고’가 나면 똑같은 보도 패턴이 반복된다.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려 들지 않는다.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주당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금지하는 개선책을 내면서 노동시간 특례 문제도 다루었다. 특례로 규정된 26개 업종을 5개로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26개에서 5개로 줄인다고 하니까 많이 줄인다 싶고 크게 개선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변화는 변환데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근로기준법 59조는 노동시간 특례업종을 규정하고 말 그대로 노동시간을 특별히 적용할 수 있게 했다. 1961년 군사정권이 도입한 조항이다. ‘특’이 들어가면 대부분 좋은 것이다. 특란, 특종, 특수, 특별시 등등.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특’은 꽤 고약한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 시겠다고 하는 근로기준법의 목적을 훼손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노사가 합의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긴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사실상 무제한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는 조항이다. 이래서 ‘노동자 자유이용권’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2013년 기준으로 사업자 수의 60%, 종사자 수의 42%가 특례 업종에 포함되는 실정이니 ‘특례’라는 말을 무색게 한다.

59조의 ‘특례’는 근로기준법 목적과 정신을 ‘특별히 훼손’하는 법률이다.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고 사업주의 무한 갑질을 제도화한 독소 조항이다. 악법 가운데 악법인 것이다. 불합리하고 상식에 안 맞고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법률 조항이 50년 넘게 존재해 왔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의심케 한다.

지난해 잇따른 버스사고로 졸음운전을 조장하는 노동시간 특례 조항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 조항 때문에 버스 기사가 새벽 4시에 집을 나갔다가 새벽 1시 반에 들어오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이 가능하다. 하루 17시간 노동은 예사고 19~21시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23시간 노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인적인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안 졸 도리가 없다.

필자가 아는 지인은 “우등버스 타지 말라” 했다. 자신이 ‘어젯밤에 분명 버스를 몰고 터널 둘을 통과했는데 어떻게 통과했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 그것도 고도의 주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운전을 장시간 연속으로 하게 되면 머리가 멍해지고 패닉 상태로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맨정신으로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수면 상태에서 본능으로 운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버스는 ‘달리는 흉기’, ‘움직이는 시한폭탄’으로 돌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국회는 노선버스만 제외하고 육상·해상·항공운송 등 모든 운수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특례’로 남겨 놓기로 했다. 운수업은 안전에 더욱더 중요한 업종이다.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분야다. 운전자를 극단적인 과로와 피로상태로 몰아가는 법률을 폐지하지 않고 남겨 놓겠다는 것은 암을 제거한다고 하면서 뿌리는 일부러 남겨 놓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안전불감증의 전형이다.

연이어 계속 터지는 대형 참사로 안전이 크게 문제 되고 있다. 모든 적폐 가운데서 안전 적폐가 가장 시급히 청산할 과제다. 노동자를 패닉에 빠트리고 대형 사고를 유발하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 규정 폐지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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