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을 피해 명성왕후는 충주로 달아났다. 이때 뒷날 진령군으로 불린 무당이 명성왕후에 접근해 왔다. 명성황후의 환궁 날짜를 이 무당이 알려주었는데 우연히 그 날짜가 맞았다. 명성왕후는 자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던 무당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환궁한 뒤 명성왕후는 무당을 궁으로 불러들여 곁에 있게 했다. 신통하게도 명성왕후가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을 만지면 아픔이 사라졌다. 명성왕후는 무당의 말이라면 모두 들어주었다.

명성왕후는 무당을 잠시라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언니’라고 부르거나 ‘진령군(鎭靈君)’이라고 불렀다. 진령군이 명성왕후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벼슬을 하고 싶은 무리들이 진령군에게 몰려들었다. 고위 관료들은 진령군을 찾아가 누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심지어 아들이 되기를 원하는 자도 있었다. 진령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누구를 벼슬을 시키고 싶으면 명성왕후에게 말만 하면 오케이였다.

백성을 쥐어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관찰사와 병사, 수사, 지방수령 자리가 그녀의 말 한마디로 이뤄졌다. 이조판서와 병조판서가 왕의 명을 받들어 할 수 있는 일을 무당이 대행했던 것이다. 이유인이란 건달은 진령군과 모자 관계를 맺고 양주목사를 거쳐 함경도 병사, 법부대신, 경상도관찰사 등 고위직을 섭렵했다. 무당이 왕과 왕비에게 어떤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자고 하면 그대로 낙점됐다.

왕과 왕비 주변에서 진령군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입을 닫고 침묵했다. 오히려 진령군을 떠받들어 한 자리 차지하기에 혈안이 됐다. 무당에게 매관매직하게 하고 인사를 좌지우지하게 한 왕과 왕비가 다스리는 나라가 온전할 수 있겠나. 왕과 왕비가 무당에 의지한다는 것은 망국을 재촉하는 망조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 국정농단사태를 일으킨 ‘박근혜의 진령군’ 최순실이 1심 재판에서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대통령에게도 30년 구형이 내려졌다. 진령군과 명성왕후의 비참한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국정은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시행돼야 뒤탈이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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