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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56. 의자왕과 백제의 멸망(1)

백제 망할 징조가 미리 나타났다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등록일 2018년03월01일 19시34분  
계백응전(동국 신속삼강행실도)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義慈)는 곧 무왕(武王)의 맏아들로서 웅맹(雄猛)하고 담기(膽氣)가 있었고, 부모를 효성스럽게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당시 사람들은 그를 해동증자(海東曾子)라 했다. 증자는 공자의 후계자인데 대효자로 유명하다. 당나라 정관(貞觀) 15년 신축(辛丑;641)에 왕위에 오른 이후 주색(酒色)에 빠져 정사는 어지럽고 나라는 위태로웠다. 좌평(佐平) 성충(成忠)이 극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옥에 가두었다. 몸이 마르고 피곤해서 거의 죽게 되었으나, 성충은 글을 올렸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습니다. 원컨대 한 마디 말만 여쭙고 죽겠습니다. 신(臣)이 일찍이 시국의 변화를 살펴보니 반드시 병란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 군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탄현(炭峴)을 넘지 말게 하고 수군(水軍)은 기벌포(伎伐浦;백강(白江)이라고도 함]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험애(險隘)한 곳에 처하여 적을 막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그 말을 무시했다. 현경(顯慶: 당 고종의 연호) 4년 기미(己未;659)에 백제 오회사(烏會寺)에 크고 붉은 말 한 마리가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번이나 절을 돌아다녔다. 2월에는 여우 여러 마리가 의자왕의 궁중으로 들어왔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좌평(佐平)의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 이밖에 태자궁 안에서 암탉과 작은 참새가 교미하였고 사자수(泗?水) 언덕 위에 길이가 세길 되는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으며, 궁중에 있는 홰나무가 마치 사람이 우는 것처럼 울었다. 다음 해 역시, 서울의 우물물이 핏빛이 되고 사자수의 물도 핏빛이 되는 등 재변이 계속되었는데, 개구리 수만 마리가 나무 위에 모였고 왕흥사(王興寺)의 승려들이 보니 배가 큰 물결을 따라 절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또 들 사슴 같은 큰 개가 서쪽에서 사자수 언덕에 와서 대궐을 바라보고 짖더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으며, 성안에 있는 여러 개들이 길 위에 모여 짖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가 얼마 후에 흩어졌다. 또 귀신 하나가 궁중으로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하다가 땅속으로 들어갔다. 왕이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하니 석 자 깊이에 거북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등에 글이 씌어 있기를, “백제는 둥근 달 같고 신라는 새 달과 같네.” 하였다. 무당에게 물으니 무당은, “둥근 달이라는 것은 가득 찬 것이니 차면 기우는 것입니다. 새 달은 차지 않은 것이니 차지 않으면 점점 차게 되는 것입니다.”하자 왕은 노해서 무당을 죽여 버렸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둥근 달은 성대한 것이고 새 달은 미약한 것이오니, 국가가 점점 성대해지고 신라는 점점 미약해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왕이 기뻐했다.

이상 삼국유사는 백제가 망할 징조가 미리 나타났다는 사례를 세세히 전한다. ?중용?에 말하기를, “국가가 장차 일어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요망한 징조가 있다”하였는데, 참으로 괴이한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백제 왕흥사지 목탑 사리구
태종(太宗)은 백제에 괴변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김인문(金仁問)을 당나라에 보내서 군사를 청했다. 당 고종(高宗)은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형국공(荊國公) 소정방(蘇定方)으로 신구도행군총관(神丘道行軍摠管)을 삼아 13만의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치게 하고 신라왕 춘추(春秋)로 우이도 행군총관(?夷道行軍摠管)을 삼아 신라군으로 합세하도록 했다.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城山)에서 바다를 건너 덕물도(德勿島:지금의 인천부근)에 이르자 신라왕은 장군 김유신을 보내서 정병(精兵) 5만을 거느리고 싸움에 나가게 했다. 의자왕이 이 소식을 듣고 신하들을 모아 계책을 물었는데, 의견이 달라 결정하지 못하고 귀양 가있는 흥수에게 물었더니, 성충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의자왕이 듣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신라와 당군은 각기 우회하여 탄현과 기벌포를 지났다. 의자왕은 장군 계백(偕伯)을 보내 결사대 5천명을 거느리고 황산(黃山)으로 나가 신라군과 싸우게 했더니 계백은 네 번을 모두 이겼다. 그러나 화랑 반굴과 관창의 용전(勇戰)과 희생으로 신라군은 사기가 올랐고 백제는 군사는 적고 힘이 다하여 마침내 패하고 계백은 전사했다. 이에 신라군은 당나라 군대와 합세해서 진구(津口)에 이르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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