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감겨오는 바람결이 비단이다/ 이맘때쯤 산속 봄도 새살림을 차렸으리/ 붉고 흰 작은 기척들 그 노루귀 보러가자// 칭얼대는 물소리 따라 골짜기 오르노라면/ 잔설 녹이다 말고 알은체를 먼저 하는/ 또 하나 샛노란 기쁨 복수초도 보고 오자” 경주 사는 조동화 시인의 봄시다. 봄은 이렇게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을 깨워 놓는다.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 만나는 계절도 봄이다. 그들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계절도 이듬해 봄이다. 이 같은 배경설정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계절이면서 시작의 계절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왕이 한해의 첫 행사로 초목에 싹이 트기 시작하면 좋은 날을 골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고문헌에 “정사를 봄에 그르치면 천체의 운행에 이상이 생겨 사철이 어긋난다. 봄의 정사에 실수가 없어야 곡식이 잘 자란다”고 할 만큼 봄을 중시했다.
시에는 청춘(靑春), 춘정(春情), 춘심(春心), 회춘(回春)이니 하는 말들이 자주 나온다. 봄에 몸과 마음이 생동함을 나타낸 것이다. 봄의 왕성한 생명력은 이따금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덧없는 일이나 허무한 일을 말하는 일장춘몽이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 ‘봄꽃도 한 때’라는 속담도 있다. 봄은 이처럼 허무의 감정을 극대화 하기도 한다.
춘심이 가득한 봄날에 온 나라가 한 사람의 성추행 사건으로 시끄럽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이 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