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대화·조건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용의 등에 "북, 진지하다" 평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6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를 통해 ‘비핵화 북미대화’와 조건부 추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의사를 밝힘에 따라 북미 간 직접 대화 분위기가 급속히 조성됐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로 ‘공’을 넘겨받게 된 미국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한반도 정세 흐름의 물줄기를 바꿀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앉을지를 판단하는 최우선 요인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에 담긴 ‘진정성’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 즉 비핵화를 의제로 올려야만 북한과 얼굴을 맞댈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일관된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적절한 조건에서만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국무부도 비핵화는 타협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특사단 방북을 앞두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사’가 대화의 시작점이지만, 최종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일단 김 위원장이 “선대의 유훈”이라며 비핵화를 주제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하고, ‘대화 지속’을 전제로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약속한 것 등은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중대한 반전”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한다면 북한과 대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점을 상기시켰고, CNN방송도 “북한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국을 쓸어버리겠다고 선언했던 것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발표”라고 평가했다.

그렇더라도 미국은 김 위원장이 생명줄을 차단하고 숨통을 바짝 죄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해상 차단’ 등 줄기찬 경제·외교적 최대 압박 전략이 북한을 남북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처럼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속아 넘어가 섣불리 제제의 빗장을 푸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도 여러 차례 밝혔다.

이에 따라 곧 미국을 방문하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방북 성과 설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심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실장이 “미국에 전달할 북한 입장을 별도로 추가로 갖고 있다”고 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특별메시지’를 직접 확인한 후 향방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에는 얼마든지 응하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원칙이다. 그가 비핵화를 전제로 달며 “김정은과 직접 대화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불과 사흘 전이다. 그가 북미대화 방침을 굳히고 만약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앉게 된다면 한반도 상황은 그야말로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단의 방북 성과에 대해 곧바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북한이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 것은 북미대화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이날 트위터 계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 표명에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 가능성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노력이 관련된 모든 당사자에 의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헛된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은 어느 방향이 됐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의 백악관 정상회담 전후로 “남북에서 나온 발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다”, “북한이 아주 좋았다”, “북한이 진지하다고 생각한다” 등 희망적인 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이에 따라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어느 방향’인지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북핵 사태의 중대 국면에서 전격적으로 북미대화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도 충분히 해석되는 대목이다.

또한 남북간의 이러한 해빙 무드의 거대한 흐름을 인정하고 국면전환에 대비하라는 미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점도 미 정부가 일단은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는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의 제프 플레이크(애리조나) 상원의원은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고, 민주당의 크리스 쿤스(델라웨어) 상원의원은 “외교가 대립의 뒤를 이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대화 가능성을 키웠다.

특히 제임스 인호프(공화·오클라호마) 상원 군사위원장 대행은 “낙관적”이라는 전망도 했다.

무엇보다 미 언론이 북한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트럼프 정부의 대북 압박 성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를 향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이번 발표는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김정은이 한국과 미국에 대해 ‘올리브 가지’(화해의 말)를 내민 것은 이 변덕스러운 정권에 대한 제재가 강화된 뒤에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미가 무릎을 마주하더라도 북한이 ‘도발-대화(유화)-도발’ 순으로 핵 완성의 시간을 버는 등 언제든지 과거의 전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접근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 정보기관 수장들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걸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할 것”(댄 코츠 국가정보국장), “지금은 낙관주의는 아니다. 말하자면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게 어떻게 되는지 볼 것”(로버트 애슐리 국방정보국장) 등 신중론을 편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ABC방송도 “그동안 주요 합의가 이뤄진 뒤 이를 이행하는 데 실패한 긴 역사를 고려할 때 이번 진전이 남북 간 평화를 확립하는 데 기여할지에 대한 회의론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그동안 북한과 공허한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며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막상 미국과 마주앉고서 비핵화 의지를 흐리거나 제재탈피 등 위기 모면에만 치중한다면 미국은 군사옵션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릴 수 있어, 북핵 위기는 오히려 한층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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