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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환 전 의성공고 교장
지난 시절 시골 농가에는 보통 한 집에 닭을 10마리 정도는 키운다. 날이 밝아 닭 통(닭장)문을 열어주면 10여 마리 닭이 닭 통을 나와 바로 온 마당을 구석구석 뒤지면서 흩어진 곡식 낱알을 찾아 먹고 또 소 거름 터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좀 젖어 있는 땅을 발톱으로 삭삭 긁어 벌레를 찾아 먹는다.

마당에 곡식을 널어 말리는 날은 닭이 포식하는 날이다. 벼나 보리를 널어 말리는 멍석에 대나무 장대를 걸쳐 두고 훠~ 훠~ 닭을 쫓아내지만, 어느새 곡식을 퍽퍽 집어삼킨다.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이면 배가 불러진 닭이 닭 통에 어김없이 들어간다.

닭 통은 대개 마당 한구석에 1m 이상의 높이에 판자나 대나무 등을 엉성하게 붙여서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만든다. 닭 통 안에는 횟대가 있다. 횟대는 대나무나 가느다란 나무막대 하나를 닭 통 바닥에서 20cm 정도 되게 설치하여 밤에 닭이 그 횟대에 올라앉아 잠을 잔다. 두 발의 발가락으로 횟대를 꽉 잡아 나란하게 앉아서 잔다. 겨울철에는 볏짚 이엉으로 감싸서 바람을 막아준다. 닭 통 문에는 가늘고 긴 나무 막대기 몇 개를 펴 붙여서 마당에서 경사지게 닭 통 문에 걸쳐 놓아서 닭이 쉽게 닭 통에 오르내리게 한다.

초봄 어느 날 어미 닭이 알통(알둥지)에서 알을 낳고 내려오지 않는다.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서 낳은 알을 품고 있다. 억지로 쫓아내어도 다시 알통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 미리 모아둔 유정란 10~15개 정도를 넣어주면 어미 닭이 날개로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킨다. 어미 닭의 크기 등 상태에 따라 부화하는 알의 수가 다르고 부화성공률도 다르다. 그중 몇 개의 알은 부화를 못 시키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닭이 알을 낳는 알둥지는 대개 볏짚으로 엮어 오목하게 만들어 처마에 매어 단다.

암탉이 달걀을 품고 있는 동안은 배설을 위해서 잠깐씩 알둥지를 나온다. 이때 모이를 뿌려주면 재빠르게 쪼아먹고는 바로 다시 둥지에 들어가서 알을 품는다. 알을 품은 지 21일이 되어 예쁜 병아리가 모두 부화하면 온 마당에 꼭~꼭~하면서 귀여운 노란 햇병아리를 몰고 다니며 먹이를 먹게 하여 키운다. 이때 어미 닭의 정성은 대단하다.

병아리에게는 모이를 자주 준다. 주인이 구구~ 구구~하면서 마당에 싸라기 등 보드라운 모이를 뿌려주면 어미 닭은 병아리를 데리고 재빨리 달려와서 꼭꼭 하면서 잘 쪼아 먹게 한다. 이른 봄에 이렇게 부화한 병아리를 ‘오새끼’ 병아리라고 하고 봄이 지난 뒤 늦게 6, 7월경에 부화한 병아리는 ‘끌새끼’라고 한다.

그 시절에는 지금은 전혀 볼 수 없는 솔뱅이(솔개)가 흔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본다. 큰 솔뱅이가 널따란 날개를 쭉 펴고 하늘을 빙빙 돌다가 햇병아리를 보면 순식간에 내려와서 낚아채 간다. 어미 닭이 솔뱅이를 발견하면 양 날개를 펴면서 꼭꼭꼭~하면 10여 마리의 노란 병아리가 모두 어미 날개 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간다. 솔뱅이가 날아가 버리면 날개를 들어 병아리를 내보내고 또다시 온 마당에 골고루 데리고 다닌다. 어미 닭이 솔뱅이를 못 보고 있는 경우는 주인이 훼~훼~ 소리를 내면 그 소리를 잘 알아듣고 어미는 날개를 들어주고 병아리는 어미 날개 속으로 빠르게 들어간다. 참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자란 오새끼 햇병아리는 6~7개월이 지난 9~10월경에는 알을 낳는 어미 닭이 되고 일부 몇 마리는 장닭(수탉)이 되어 벼슬이 나고 풍채를 재법 갖추고 ‘꼬끼ㅇ요~’ 하며 울기 시작한다.

이 시기 마당에는 고추잠자리가 날고, 빨랫줄에는 제비가 앉아 있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 잠자리를 사냥하느라 지친 어미 제비가 잠시 빨랫줄에 앉아 쉬고 있다. 매미 소리도 맴맴 매~애~앰 참매미 소리로 바뀐다. 높아가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고개를 숙이면서 익어가는 벼, 빨갛게 익어가는 감 등으로 풍요한 한해의 가을이 찾아오는 것이다. 콩도 봄에 심은 콩을 ‘올갈이 콩’이라고 하고 6월 말경 보리를 베어낸 밭에 늦게 심은 콩을 ‘끌갈이 콩’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끌갈이 콩도 무성하게 잘 자란다.

5일 시장은 먼데 귀한 손님이 갑자기 왔을 때 닭이 더없이 요긴하다. 닭 한 마리를 잡으면 손님 접대를 하고 온 집안 식구들도 손님 덕분에 특별식을 먹게 된다. ‘백년손님 사위가 오는 날 장모는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도 있다. 닭 한 마리가 극진한 대접의 표상(表象)이 된다. 보통의 손님인 경우는 달걀 한두 개를 작은 그릇에 풀어 담아 밥솥에 넣어 밥을 지으면 밥과 함께 찜이 되어 넉넉한 손님 접대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살림에 소중한 닭을 자유스럽게 뛰놀며 귀엽게 자라도록 애완동물처럼 기르던 것인데 요즈음은 최소의 면적에 부자유스러운 밀집 사육을 한다. 보기에도 애처롭다. 그런 탓인지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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