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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부산 초고층 복합건물 엘시티 55층 외벽에 유리설치 작업을 하던 노동자 3명이 작업안전 틀 추락과 동시에 목숨을 잃었고 다른 1명은 추락물에 맞아 사망했다.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하청노동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용노동부 ‘2016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2016년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969명 가운데 건설업종에서 사망한 사람이 554명이고 그 중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499명이다. 이 가운데 작업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람은 366명이고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람만 281명이다. 하루에 한 명씩 추락으로 사망하고 있는 셈인데 실질적인 대책은 없다.

한국 사회는 원청이 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도록 현장이 구조화되어 있다. ‘죽음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가 일반화된 탓이다. ‘이익은 원청, 죽음은 하청’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위험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구조가 정착한다는 것은 산업현장에서 죽음의 행렬을 부르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서열화된 불평등 구조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하청노동자들은 경제적인 대우는 물론 고용 안정성도 낮은 반면에 노동시간은 길고 노동 강도는 세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들은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위험이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고 인간 존엄성과 평등권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가 침해되고 있는 사회라는 걸 드러내 준다.

사고가 나면 항상 대응 패턴이 똑같다. 언론에 보도되는 규모와 사회적 충격에 따라 사과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사고 낸 회사는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경찰은 개략적인 사건의 원인을 밝히면서 관련자 전원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말한다.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은 새로운 법안을 내겠다고 말한다. 실제 법안을 발의하는 사람도 있다. 한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10~20명의 의원이 연 서명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발의로 끝난다. 법안은 통과되지 않는다. 계속 계류되고 국회 임기가 끝나면 법안의 운명도 종말을 고한다. 또 사고가 나면 도돌이표처럼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간혹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도 있다. 국회 차원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임시방편 땜질식이다. 지난 1월 30일 통과된 이른바 ‘소방 3법’처럼. ‘땜질식’이 반복되는 이유는 국회와 정당들이 ‘안전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개혁 작업을 꺼리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방안을 찾는데 골몰한다.

‘의지’만으로 안전현실은 개혁되지 않는다. 돈이 들어가고 ‘불편’이 동반되며 강압적인 법률 집행이 뒤따른다. 돈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것은 지역구 또는 자신이 속한 직역으로 가져갈 돈이 줄어드는 걸 뜻하고 그걸 감수하지 않으려면 기득권 세력과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자신과 관련된 예산을 줄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한 세금’을 더 걷자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회가 기득권 구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한시라도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 다시는 엘시티 참사 같은 불행한 사태가 나지 않도록 법적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우선 네 가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안전 업무의 하청화’를 금지해야 한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중대안전사고를 낸 원청기업의 대표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대 안전사고를 내는 기업과 원청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최저입찰제를 금지하고 안전을 우선 고려하는 ‘최적가치입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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