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 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에 묵은 춘장을 앉혀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는 짜장면에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감상) 그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 보는 날 죽도시장 그 골목. 엉덩이 다닥다닥 붙이고 앉아 칼수제비 먹는 집으로 간다. 칼바람이 발목을 휘감고 지나가도 아무도 다리를 떨지 않는 곳 더러 팔이 부딪쳐 젓가락을 놓쳐도 얼굴 찌푸리지 않는 곳. 그곳에서 가장 대접받는다는 느낌으로 한 끼를 먹는다. 그래서 사랑으로 채워진 나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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