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스캔들’ 문서조작 의혹으로 재점화…연립여당도 국정조사 요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8일 남북이 4월말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대북제재 완화나 대가 제공을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또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 “우리나라는 북한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참의원 예산위에 출석 중인 아베 총리(왼쪽).연합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퇴진 위기까지 몰아갔던 ‘사학스캔들’이 다시 일본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특혜를 시사하는 정부 문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세청 장관이 사임했고, 의혹의 핵심에 있던 담당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스캔들이 다시 소용돌이치고 있다.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학원과 아베 총리 부부가 특수한 관계로, 특혜를 주고받았다는 의혹으로 정리되는 ‘사학스캔들’은 지난해 2월 처음 제기됐다.

이후 “문제 될 것 없다”는 식으로 일관한 아베 총리와 정부의 오만한 대응, 아사히신문 등을 통해 이들 학원과 아베 총리 부부와의 유착 증거가 속속 폭로되며 60%대 고공행진 하던 지지율은 26%(작년 7월 마이니치신문)까지 추락했다.

때마침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아베 총리와 여권은 연일 북한의 도발 위협을 강조하고 대피훈련까지 하는 등 비리의혹 물타기에 ‘북풍(北風)’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론이 반전되자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이라는 카드를 전격적으로 선택했다.

이어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22일 총선에서 압승했다. 이는 사학스캔들을 정면으로 돌파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베 총리는 군대보유 명문화 등 ‘전쟁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을 다음 목표로 정하고 여야 정치권을 독려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베의 계획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벼랑 끝으로 몰렸던 ‘악몽’이 다시 그를 엄습한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이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아니라 재무성이 악몽의 출발이었다.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아베 총리 및 극우계열 인사와 대립해 왔던 아사히신문이 지난 2일 “재무성이 모리토모학원의 국유지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해 문서를 조작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국회의 관련 문서 제출 요구에 내부 결재 문서에 포함된 ‘특례’라는 문구를 여러 곳에 걸쳐 삭제한 뒤 제출했다는 것이다.

아베의 독주에 존재감을 잃고 있던 야권이 일제히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추궁이 이어졌고, “모른다”고 일관하던 재무성은 지난 8일 야권의 압박에 해당 문서 사본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문서가 종전에 국회에 제출했던 문서의 사본으로 밝혀지면서 재무성의 이런 대응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입헌민주당, 희망의 당, 민진당, 공산당, 자유당, 사민당 등 6개 야당이 지난 8일 이에 반발해 참의원 예산위원회를 보이콧한 데 이어 9일에도 국회 일정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성의 문서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면서 아베 총리는 더욱 수세로 몰리는 양상이다.

아사히신문이 의혹을 제기했던 조작 자료 이외에도 재무성이 같은 시기에 작성한 별도 결재 문서에도 ‘본건의 특수성을 감안’, ‘특례 처리에 대한 본성(재무성) 승인 결재 완료’ 등의 기재가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은 아베 총리에 비판적인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신문은 물론 그에게 우호적인 요미우리신문, 그리고 공영방송 NHK 등을 통해서도 9일 상세히 보도됐다.

악재는 이날도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던 국세청 장관이 사임하고 모리토모학원의 국유지 매각을 담당하던 공무원이 자살하며 계속 나왔다.

그동안 야권의 사퇴 압박을 받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국세청 장관은 이날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국유지 매각 당시 재무성 국장으로 재직했다가 국세청 장관으로 ‘영전’했지만, 사학스캔들과 관련해 자료를 폐기했다고 거짓말했다가 들통이 났다.

사가와 장관의 사임으로 아베 총리의 오른팔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입지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재무성 긴키(近畿) 재무국의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매각 담당 부서에서 일하던 남성 직원이 지난 7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이 남성은 모리토모학원과 매각 교섭을 담당하던 직원으로, 최근 몇 달간 결근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연립 여당인 공명당에서도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노우에 요시히사(井上義久) 공명당 간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정조사권은 국회에 있으니 필요가 있으면 여야당 합의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리 3연임을 노리는 아베 총리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등 각 계파 중진들과 모임을 갖고 표 단속에 나서고 있다.

니카이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는 소속 의원 44명으로 당내 5대 파벌이다. 현 상황에서는 누카가파와 기시다파,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의 이시바파(20명),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전 경제재생상의 이시하라파(12명) 등이 아베 연임에 반대 또는 유보적이다.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지난해처럼 바닥을 칠 경우엔 파벌별로 생존을 위한 방안으로 합종연횡에 나서면서 차기 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미 교도통신이 문서조작 의혹이 제기된 직후 지난 3~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아베 내각 지지율은 48.1%로 한 달 전 조사에 비해 2.7%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추이가 주목된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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