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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평생직장인 공직자의 외길을 퇴직하면 무대 뒤로 사라진다고들 한다. 동전 앞면은 각박한 생존경쟁에 ‘앞만 보고 아등바등 사는 세속의 삶’이라면 동전 뒷면은 인생의 가려지고 흐트러진 ‘뒤를 되돌아보고 챙기고 정리하며 사는 비세 속의 삶도 살아야 철학이 담긴 인생 완성이다. 인생 백세시대에 자신의 출생 간지가 60년 만에 돌아오는 환갑의 앞은 동전 앞면, 뒤는 동전 뒷면 제2의 인생 또 다른 길 잘 달려 보자.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근대화 시절 여름은 참 무더웠다. 오래된 기와와 함석지붕 목조건물인 군청청사 군수실 천정에 달린 탈탈거리며 쇳소리 내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한 대가 신고받는 군수님과 신고하는 신규발령자 15여 명의 등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던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먼동이 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앰프에서 ‘새마을 노래’와 ‘잘살아보세’노래가 흘러나와 잠을 깨웠다. 조기 청소를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려 독려도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했었다. 재건 복을 입고 마을안길 포장과 퇴비증산, 하곡·추곡수매는 물론 보리파종, 모내기, 피뽑기, 벼 베기 등 영농지도를 새마을 모자를 눌러쓰고 논두렁 밭두렁을 운동화 바닥이 닮도록 자전거로 걸어 다닌 나날들. 별 보고 출근하여 별 보고 퇴근하는 힘든 시절이었다.

자원 빈국에다 좁은 땅에서는 ‘교육과 수출’만이 가난의 대물림을 극복한다는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 돼 혼신의 투지로 일하던 공직 입문 3년 차 되던 1977년 말에는 선진국의 초석이 되는 수출 100억 달러 고지를 달성해 감개무량했다. 초임 면사무소 근무부터 시청에서 퇴직할 때까지 국가시책과 영농지도에 주민들과 밤낮으로 고락을 같이했듯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불철주야 열정을 바쳤기에 오늘날 수출대국 신화창조에 일조하고 기여하여 잘살게 된 것 같다.

정년퇴직하고 처음 몇 달간은 노는데 적응이 안 되어 지겹도록 세월이 멈추어 있는 허송세월만 보냈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전의 앞면인 양지에서 시간에 쪼기 듯 ‘내 자신을 위해 살기’ 바빴다. 이제 나이 들고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어 동전 뒷면인 음지에서 가정일도 봐주고 집안일에도 나서며 주변에 신경을 쓰니 또 다른 세상이다.

직장에 안 나가도 집안에도 할 일을 찾으면 일이 많다. 힘들고 궂은일도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하게 되고 여유로운 시간을 집안과 이웃에 보탬이 되니 빚 갚는 기분도 든다. 어떨 때는 허드레 일하는 백수도 정말 바쁘다고 넋두리도 한다.

절제생활과 깊은 묵상에 잠기는 수도자의 독신생활을 보며 탐욕에 가열되고 혼탁해 가는 속세에 빠지지 않는 수련의 힘을 기르기 위해 신앙생활이 곧은 삶에 버팀목이 된다. 기도와 묵상과 봉사가 심신이 이토록 마음이 편안하고 해맑아 ‘곱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기분이 든다.

세상은 자연법칙과 음양 조화로 이루어지듯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다 살아 보아야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 완성이다. 돈을 벌었으면 쓸 줄도 알고, 많이 배웠으면 전수도 하고, 많이 가졌으면 나눌 줄도 아는 것이 동전 양면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동전 앞면의 세상에서 모은 재물과 연마한 소질과 능력을 동전의 뒷면 같은 음지로 들어가 내가 가진 능력을 이 세상에 하나, 둘씩 토해내는 것이 세속적인 삶과 비세속적인 삶의 차이로 잡거나 놓아 버리는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모두를 내려놓고 가뿐하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새털처럼 가뿐한 인생, 말은 쉽게들 하지만 정말 실천하기 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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