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_대구교대교수2014.jpg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소설가
어제 점심시간 때의 일입니다. “살아생전에 통일을 볼 수 있을런가?”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자리를 같이했던 두 명의 밥 동무가 상반된 대답을 했습니다. “아마 힘들 걸”과 “통일이 별건가? 자유왕래만 되면 통일이지”라고 각각 말했습니다. 저는 후자 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본 TV토론의 한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국민이 현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딱 두 개뿐이다. 하나는 전쟁이 안 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퇴임 후 감옥에 안 가는 것이다”라는 한 토론자의 농담입니다. 다 웃었습니다. 농담의 형식을 빌렸습니다만 핵심을 제대로 짚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려울 때는 과한 욕심을 버리고 되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데 밥 동무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말하고 상상하는 힘은 우리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문학, 종교, 도덕, 학문, 정치 같은 것들이 모두 그것을 통해서, 그것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크고 중요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들이 인간의 말과 상상 안에 들어오지 않는 한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없으면 우주도 없는 것이니까요. 물론 언어와 그것을 토대로 한 인간의 상상은 자체로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게 많습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 개를 말하기 위해서 만 개를 버려야 하는 게 인간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탁월한 설득자들은 늘 비유와 예시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듣는 이들의 삶에 자신을 기꺼이 동참시켜 공감대를 확장합니다. 듣는 이들의 상상을 촉발시켜서 활발한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도록 핵심을 짚어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의 말씀들을 듣다 보면 그들 위대한 설득자들이 얼마나 듣는 이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는지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늘 그때그때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화두로 삼았고, 많은 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일까를 숙고했습니다. 자기의 높은 경지가 누수(漏水) 없이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기 위해 남다른 비유와 예시들을 널리 구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노력은 ‘현실을 규정하고 설명하는 표현’으로 종종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표현 중의 하나로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충고가 있습니다.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톤유쿠크(돌궐제국의 명장)의 비문 마지막 문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지금 우리 민족이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힘들게 살아온 것이 우리 민족의 현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어설프게 성을 쌓고 안주했다가는 망국의 설움을 겪습니다. 문패와 어린 자식들과 그동안 피땀 흘려 모은 재물을 지키려면 부지런히 이동해야 합니다. 담을 높이 쌓고 비싼 돈을 들여 힘센 이웃에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밖에서 닥친 난리에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면 한시도 ‘이동하는 마음’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생각은 사회를 떠나서는 생길 수도, 이해될 수도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버려야 하는 것이, 유행가 가사를 빗대어 말씀드리자면, ‘오직 하나뿐인 그대’입니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것들은 아예 없고, 하나가 옳으면 다른 것들은 다 그르다고 여기는 풍토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는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길에는 비단길도 있고 자갈길도 있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이동통로를 택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남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마음’으로요.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