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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원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협객의 무리와 어울렸던 평민이었다. 그런 사람이 군대를 일으켜 황제가 된 데에는 여러 사람이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들 가운데 3대 공신이 바로 장량·소하·한신이다. 흔히 ‘장자방’이라 부르는 장량은 뛰어난 전략가였고, 소하는 행정을 보좌했으며, 한신은 전투에 능한 장군이었다.

지방선거가 9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출마자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미 출사표를 던졌고 어떤 이는 막바지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야말로 당선이라는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치열한 각축(角逐)이 시작되고 있다. 각축이란 서로 이기려고 다투는 것을 일컫는데 사슴을 쫓는다는 뜻의 축록(逐鹿)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이 ‘축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유례 된 말로 천하를 놓고 다투는 것, 다시 말해 축록은 정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1950년~1960년대까지는 각종 선거전을 축록전으로, 정치권을 축록계로 많이 표현했다고 한다. 이렇게 선거는 곧잘 전투에 비유되어 출마자들 또한 사즉생(死卽生), 배수진(背水陣) 등의 비장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던 중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한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장계를 선조에게 올린 후 명량해전을 앞둔 부하들에게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死卽生 生卽死)”라며 전투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를 새롭게 다져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대승을 거두었다.

한고조 유방의 수하 대장군이었던 한신의 전술에서 유래한 배수진 역시 막다른 곳에 몰린 것처럼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싸움에 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 뒤에 강물이 흐르니 싸움에 져서 죽든지 강물에 빠져 죽든지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에 임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바로 이러한 각오와 자세를 새롭게 다지는 비장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뛰어난 전략과 행정과 현장을 아우르는 부하들을 포진시킨 유방의 용인술이 더해진다면 상대방이 가진 몇 배의 조직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흔히들 ‘선거는 전쟁’이라 말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의 일이라는 점이다. 배수진과 사즉생이라는 죽을 만큼의 각오와 자세를 당선 이후에도 지속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토록 다졌던 그 각오와 자세의 비장함, 즉 초심을 잃지 않고,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량(選良)도 초심을 잃어버리면 선량이 결코 될 수 없을뿐더러 이미 선량이 아닐 것이다. 비록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 비장한 초심으로 주어진 책무를 수행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물,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이란 유방의 용인술이 뒷받침된다면 그 부족함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심이 바로 진정한 능력인 셈이다.

지방분권과 권력구조개편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의 개헌안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한다. 국회는 이에 비해 다소 부진하지만 1987년 헌법 이후 31년 만에 시작된 개헌작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워낙 높아 더 이상 미루거나 늦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새로운 분권시대에 걸맞은 가치와 비전을 가진, 무엇보다 초심을 지켜나갈 우리 일꾼을 뽑는데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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