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억 입 벌린 악어들이 튀어나오고 있어 물병의 물들이 피로 변하고
접시들은 춤추고 까악 깍 울고 표범들이 담을 뚫고 달려오고 있어


뭐 이런 일이 한두 번이냐,
봄밤은 건들건들
슬리퍼를 끌고 지나가는데


덜그럭 덜그럭
텅 빈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는 유골들
통곡도 뉘우침도 없이
작년 그 자리에 피어나는
백치 같은 꽃들


누가
약에 취해 잠든 내 얼굴에 먹자(墨字)를 새기고 있어
도둑놈, 개새끼, 사기꾼
인둣불을 지지고 있어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 것이
생글생글 웃는 것이





감상) 아무렇게나 걸어보고 싶었다. 그건 아니잖아, 누가 지적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봄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얀 목도리를 벗어 목련몽우리에 걸고 노란 구두 한 짝은 개나리 밑둥에 벗었다. 나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봄에게 간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맨몸으로 누군가에게 걸어가 보고 싶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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