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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경상북도는 사상의 바다다. 한국의 모든 정신문화의 원천이 되는 사상이 경북에서 나왔거나 경북에서 성행하였다. 경북도민은 마땅히 경북의 얼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야 확고한 지방분권시대에 지역의식이 생기고 굳건한 정체성이 확립된다. 주체성과 방향감각이 있는 시·도민이 되어야 혼란스럽고 앞날의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로 나아갈 목표를 정하고 모두가 단합하여 의미 있고 생동하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차원에서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경북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지역사회에 알리려고 애쓴 정책은 지방행정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경북정신의 큰 물줄기는 한말 동학으로 표출되었다. 김범부 선생의 지적과 같이 동학에는 화랑도로 대표 되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류 정신이 녹아있다. 그리고 유학과 기독교의 기본이념도 상당 부분 융합되어 있다.

동학은 유교 가문 출신인 최제우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그는 한말, 국운이 풍전등화같이 위급하고 정신적으로도 마음 둘 곳 없는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신분 차별을 비롯한 갖은 부조리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늘님 앞에 만민이 평등함을 주장하고 비교적 간단한 수련을 통하여 누구나 자신의 영적 성취를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최제우는 자기 집의 여종 두 사람을 방면하여 한 사람은 며느리로 다른 한 사람은 양딸로 삼았다. 이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훌륭한 행동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동학은 경북에서 일어났다. 창설자 최제우와 2세 교주 최시형 두 선생이 경주 사람이고 활동지역도 경주, 포항, 영해, 영덕, 상주, 흥해, 예천, 청도, 안동, 평해 등이다.

그런데 이 동학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에 경북이 빠졌다. 지난해 6월 27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전라북도와 문화체육부 특수법인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제출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2018년 3월에 제출 예정인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의 등재신청대상(2019년 등재 결정)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동학에 관한 기록이 전국에서 상주가 가장 많다. 상주 동학교당에 전적, 판목, 복식 등 다양한 유물 총 177종 1084점이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적은 ‘동경대전총목록(東經大全總目錄)’·‘통운역대(通運歷代)’·‘용담유사’ 등이고 판목으로는 동학경서판목·동학가사판목, 한글본·국한문 혼용본 등이 있고 복식으로는 전복(戰服)·학창의(鶴氅衣)·받침예복(禮服)·오색예복(五色禮服)·오색관(五色冠)·유건(儒巾)이 있으며. 당시의 인쇄용구(印刷用具)까지 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정부와 동학농민군, 일본 공사관 등이 생산한 기록물이 대부분이다.

동학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려면 당연히 경북과 전북이 협조하여 조화롭게 세계에 알려야 한다. 당초 경북에서도 문화재위원회에 신청하였는데 전북의 기록만 단독으로 유네스코에 올리는 결정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된다. 경상북도는 하루빨리 재신청하여야 할 것이고 최소한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으로라도 등재하여야 할 것이다. 아직도 경북과 대구시, 그리고 우리나라는 정체성 혼미 상태에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경주의 동학 정신과 상주의 기록물을 융합하면 충분히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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