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 안전도시 조성에 문화를 입히자- (7) 세계적 문화유산 솔즈베리 ‘스톤헨지’

스톤헨지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있다.
저기, 저기에 별처럼 순수한 여인 ‘테스’의 슬픔이 있다.

토머스 하디 소설의 주인공 ‘테스’가 불행한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

부유한 더버빌 가 주인 아들 알렉에게 강제로 순결을 빼앗기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간 ‘테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긴긴 겨울밤 내내 속울음을 참아야 했던 소설의 창작 무대는 아득한 영국 솔즈베리 평원 지평선 언덕에 홀연히 서 있었다.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전공한 이예성 교수가 들려주는 애절한 테스의 삶을 더듬으며 찾아간 솔즈베리 ‘스톤헨지’.

이곳이 고향인 토머스 하디가 소설 ‘테스’에서 ‘바람의 사원’이라고 표현한 신비의 장소이다. 그래서 해마다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곳이다.

그곳은 드넓은 초원 위에서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은 자유로이 오고 갔다. 마치 테스의 영혼이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그렇게 바람은 자유로웠고 겨울 햇살은 서럽도록 눈부시게 쏟아졌다.

빛과 바람은 때로는 운명 교향곡처럼 강렬하게, 때론 고양이 졸음같이 부드러웠다.

스톤헨지
‘스톤헨지’는 거대한 고인돌이 커다란 원을 그려 어깨동무를 하며 넓은 평원 언덕 위에서 군무를 펼치는 듯했다. 크고 작은 고인돌들이 숨바꼭질하는 듯하기도 했다.

제각각 무거운 돌판을 머리에 이고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내고 있었다.

마치 저 멀리 우주에서 달려온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맞이하기 위한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모습이었다.

거대한 고인돌들이 주는 영감에 칠레 이스터 섬에 있는 사람 얼굴 모양의 석상 모아이(Moai)가 떠올랐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섬 전체에 걸쳐 600개 이상의 모아이 상이 흩어져 있는데 대부분 석상은 한 방향만을 가리키며 서 있다고 한다.

‘스톤헨지’와 ‘모아이’,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또 무엇이 그토록 그리워서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비롭게 남아서 인간의 가슴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을까.

세계 10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영국 고대 거석기념물 스톤헨지(Stonehenge)는 영국 남부 윌트셔 주 솔즈베리(Salisbury) 평원과 에이브버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에 있는 환상 열석 유적이다. 높이 8m, 무게 50t에 달하는 거석 80여 개가 세워져 있다. 수수께끼의 선사시대 유적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스톤헨지에 사용된 석재는 셰일과 블루스톤(휘록암과 유문암)이다. 이 두 종류 암석으로 이루어진 스톤헨지는 바깥쪽 원을 셰일 서클, 안쪽 원을 블루스톤 서클이라고 부른다.

셰일 서클은 셰일을 30개 세운 다음 그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 원을 그리도록 배치했으며, 안쪽의 블루스톤 서클은 크기가 작고 모양도 불규칙한 돌을 사용해 만들었다.

블루스톤 서클 안에는 다섯 기의 말발굽 형태로 배치된 셰일 삼석탑(두 개의 입석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 놓은 돌)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블루스톤 입석도 말발굽 모양이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과거에는 세로로 세워져 있었으나 쓰러져 중앙에 제단처럼 자리하게 된 블루스톤이 있다. 셰일 서클 바깥에는 Y홀, Z홀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원을 그리듯 파여 있다. 또 그 바깥쪽에는 오브리 홀이라는 56개의 구덩이가 파여 있으며 그 뒤로는 두 개의 입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

셰일 서클 바깥에서 떨어진 곳에 힐스톤이라는 돌이 혼자 서있고 이 돌과 셰일 서클 사이에 도살석이라는 돌이 있다. 이 돌들은 모두 태양의 빛에 관련해 일직선으로 놓여 있는데, 이 때문에 해시계였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만들어진 연대는 대략 기원전 3000년부터 2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스톤헨지’의 비밀을 연구해온 영국은 지난 2008년 신석기 시대 유적인 스톤헨지는 ‘무덤’이란 결론을 내렸다.

칠레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영국의 5개 대학이 연합한 ‘스톤헨지 리버사이드 프로젝트’ 연구팀의 조사 결과, 스톤헨지가 500년 동안 그 지역을 다스리던 유력 가문의 무덤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공중에 걸쳐져 있는 돌’이라는 뜻의 스톤헨지는 규모는 거대하지만 구조는 단순하다. 가장 바깥에는 도랑을 파 만든 둑이 있고, 그 안쪽에는 30개의 거석이 줄지어 원을 이룬다. 중심부에는 무게 50t이 넘는 다섯 쌍의 삼석탑이 말발굽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이 스톤헨지 유적을 놓고 누가, 어떻게, 왜 축조했는지 다양한 설이 난무했다. 연구팀을 이끈 마이크 피어슨 교수는 ‘죽은 자의 영혼을 모시는 곳으로 고대 종교 시설의 반쪽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스톤헨지에 얽힌 비밀의 실타래는 1967년 발굴한 유적으로, 스톤헨지에서 불과 2.4㎞ 떨어진 ‘우드헨지’가 연구진들의 주장을 사실로 만들 증거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연구진들은 이곳에서 출토된 동물 뼈에 방사선,탄소 연대 측정법을 도입해 건조 시기를 알아내고, 세월 속에 자취를 감췄던 잃어버린 고대 도시도 발견했다. 1천여 채에 이르는 가옥의 모습은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북유럽 최대의 유적지뿐만 아니라 스톤헨지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신비한 유적 ‘스톤헨지’는 여전히 비밀을 머금은 채 인류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다. 영국 낭만파 대표시인 워즈워스는 “스톤헨지는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하면서 오만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며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준다고 표현했다.

겨울 햇살이 스톤헨지에 긴 그림자를 남길 때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뒤돌아서는 발걸음마다 스톤헨지 사이를 드나들던 바람과 내리쬐던 햇살이 자꾸만 뒤따라왔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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