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모태 삼성상회터 찾아보니···

22일 창립 80주년을 맞은 삼성그룹의 모태 삼성상회 자리에는 국내 최고 기업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을 기념하는 이렇다할 행사하나 없이 사람의 발길이 끈겨 있다.(사진 아래) 삼성은 창업자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38년 대구에서 시작한 ‘삼성상회’를 모태로 한다. 동상으로 서 있는 이병철 전 회장(사진 아래)의 모습이 ‘이래도 됩니까?’하는 듯이 팔을 펴 보이고 있다.윤관식기자 yks@kyongbuk.com

22일 오후 1시. 

대구시 중구 인교동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기념공간 앞. 이곳을 찾는 관람객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날 80주년을 맞은 삼성그룹의 태생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창립 80주년 기념일, 국내 최고 기업이자 세계적 기업그룹인 삼성의 태생지 대구에서 기념행사나 기념사업 하나 없이 보낸 것이다. 


삼성은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38년 3월 1일 대구에서 시작한 ‘삼성상회’를 모태로 한다. 당시 청과물과 건어물을 파는 무역업을 했던 삼성상회의 후신은 현재의 삼성물산이다. 원래 3월 1일이 창업기념일이었지만 1987년 총수에 오른 이건희 회장이 이듬해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창립기념일을 3월 22일로 정했다.

삼성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세우며 상업 자본에서 산업 자본으로 변신한 뒤 1960년대 금융, 1970년대 중화학, 1980년대 전자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대한민국 제조업의 산 역사’로 자리매김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1976년 2월 제일모직 정비과에 입사했다는 최광교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은 “‘대구를 버리면 절대 안 된다. 주인의식을 가져라'고 하시던 고 이병철 회장님의 격려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삼성상회의 기념공간은 지난 2011년 6월 기존 삼성상회 터와 크레텍책임(주)이 시에 기부채납한 부지를 합해 총 215.9㎡의 규모로 준공됐다. 공간 내에는 과거 삼성상회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 벽’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 분의 1로 축소한 청동모형을 설치했다. 또 호암의 선비적 기품과 경남 의령 호암 생가 뒤뜰의 대나무 숲을 상징해 기념공간 주변에는 대나무와 송악이 심어져 있다.

삼성상회 기념공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구 삼성창조캠퍼스 내에 삼성상회가 과거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옛날 제일모직 터였던 곳이다. 여기에는 삼성상회를 비롯 한국 섬유산업의 산 역사인 제일모직 기념관과 그곳에 근무했던 근로자들의 기숙사 6동이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모습도 삼성상회 기념공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찾는 사람을 보기 드물었다. 글로벌 그룹의 발원지라고 하기엔 너무 삭막한 분위기였다.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출발지 임에도 이를 알리는 기념 행사나 현수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복원된 삼성상회와 제일모직 기념관, 기숙사 전시실 등의 삼성기념관(가칭)개관식을 지난해 상반기에 할 예정이었으나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역사 시설을 보완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마무리 되면 적당한 시점에 정식 개관을 할 것”이라면서 그 시기는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삼성상회에는 고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과 침대, 사랑방, 책상, 난로 등 집기류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 전시관에는 당시 방직기계와 옷감을 비롯 생산된 제품이 있다. 기숙사에는 근로자들의 생활관과 그 당시 최고의 시설을 자랑했던 목욕탕, 졸업앨범 등의 각종 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최광교 의원은 “개관식을 일찍 해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아쉬워 했다.

김연창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삼성기념관(가칭)의 개관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삼성 그룹의 내부 사정으로 오픈이 미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무환 기자
박무환 기자 pmang@kyongbuk.com

대구취재본부장. 대구시청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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